[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사적 복수’ 콘텐츠의 명암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사적 복수’ 콘텐츠의 명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1.27 09:52
  • 호수 8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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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2008년 개봉한 영화 ‘테이큰’은 리암 니슨을 단숨에 세계적인 중년 액션배우로 만들며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전직 특수요원인 아버지가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당한 딸을 직접 구하러 나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특히 ‘주인공이 악당과 치고받고 싸우다 극적으로 승리한다’는 틀에서 벌어나 일방적으로 소탕하는 구조로 전개되면서 관객들에게 더 큰 통쾌함을 선사했다. 영화 막바지 딸에게 총을 겨누고 협박하는 악당에게 고민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2009년 개봉한 ‘모범시민’ 역시 사적 제재물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에 의해 아내와 딸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주인공의 복수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초반의 복수를 끝내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면서 복수물의 고정화된 패턴을 깬다. 사실 주인공이 복수하려는 대상은 인물이 아닌 ‘사법체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테이큰’과 ‘모범시민’은 복수물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며 이후 제작된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준다. 

올해 초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더 글로리’의 성공 이후 최근 사적 제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더 글로리’ 역시 ‘테이큰’처럼 고전 복수극과는 달랐다. 보통 과거 복수극은 중반까지 주인공이 시달리다 후반에 가서야 제재를 가하는데 성공하는 구성인데, 더 글로리는 주인공이 고통받는 장면을 단 1회 분량으로 끝냈다. 주인공에게 동화되는 시청자의 짜증을 낮추고 통쾌함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최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비질란테’도 낮에는 법을 수호하는 모범 경찰대생이지만, 밤이면 법망을 피한 범죄자들을 직접 심판하는 자경단으로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이 작품은 ‘부장판사 출신’인 문유석 작가가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현재 사적 제제물이 유행하는 이유는 분명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인권 운운하며 사진조차 공개하기 어려운 반면 피해자 보호엔 무신경하다. 이처럼 현실이 답답하니 영화‧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을 하는 시청자가 늘었고, 결국 이런 류의 영화‧드라마가 흥행하는 것이다. 사적 제재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시대가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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