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다녀와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다녀와서
  • 관리자
  • 승인 2006.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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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통해 본 ‘폭동·사상전’ 승공정신 일깨워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면 때로는 이웃들과 아니면 친목단체에서 선진지(先進地)견학이라는 명목으로 전국을 다녀 볼 기회가 많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좀처럼 나이든 노(老)세대들과는 동행을 주선치 않을 뿐 아니라 함께 동참하려고도 하지 않는 추세여서 씁쓸할 때가 종종 있다. 며칠 전 우리 관내 노인회에서 특별초대가 있어 거제도에 있는 옛 포로수용소를 다녀 온 적이 있다.


6·25를 이미 겪었던 70대에서 많게는 90대까지 산전수전 모두 체험했던 세대들이었기에 그 날만은 한결같이 감회가 새로웠다.

 

또 세월은 주마등처럼 흘러 어느덧 반세기를 훌쩍 넘었기에 그 분들의 가슴속에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6·25 참전용사들이었고 낙동강 전투에서부터 인천 상륙작전 및 9·28 서울탄환까지 처절하고 처참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을 잊어버린 듯 옛 포로수용소 위에는 산이 뚫리고 고가의 길이 나고 주변에는 고층 건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도시에는 남과 북의 병사들이 한우리 한막사에서 함께 생활했으리라는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전시된 영상화면을 볼 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처참했던 폭동과 사상전, 특히나 실제 상황과 거의 비슷하게 설치되어 당시의 처참함을 한눈에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웅대한 전시물과 영상 등은 마치 눈앞에서 전쟁이 펼쳐진 것 같아 섬뜩함 마저 들었다.

 

영상과 전시물을 보고나니 ‘포로수용소는 그저 전시효과로 형식적으로만 유지하고 있겠지’라고 여겼던 생각들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감나는 영상과 전시물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포로수용소에는 단체로 찾아온 젊은이들과 가족단위로 찾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젊은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전시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또 젊은이들은 진지한 눈으로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보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분명 젊은이들은 이곳을 찾기 전에는 많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은 6·25 전쟁이 북침일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을 것이고, 미군이 우리나라에서 왜 장기간 주둔하고 있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젊은이들은 그동안 잘못알고 있었던 사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어르신들의 확고한 국가관과 승공정신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리라.


수용소를 찾은 한 젊은이는 “이억만리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의롭게 전사한 16개 참전국 용사들이 아니었으면 당시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우리나라가 어찌됐겠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젊은이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포로수용소를 나오며 작은 아쉬움이 있었다. 전쟁 당시 물건이 전시된 전시물 가운데 아군의 지프차가 6·25 것이 아닌 몇 년 후에 생산된 차종이었다. 이는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젊은이들에게 확고한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작은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조금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훈열 연기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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