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어르신들 번 ‘돈’, 다 쓰고 가시길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어르신들 번 ‘돈’, 다 쓰고 가시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2.18 10:31
  • 호수 8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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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12월 8일 아들의 명의로 구입했던 오피스텔을 되찾아온 70대 A씨의 이야기가 보도돼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되찾아온 사유가 아들의 파렴치한 행각이었음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A씨가 20대였던 1970년대, 그의 어머니가 만성 폐 질환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A씨를 포함한 5남매를 돌보기가 벅찼다. 이때 과거 A씨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던 박 모 어르신이 인근으로 이사 와 간병인 역할을 자처하며 5남매를 친자식처럼 돌봤다고 한다. 

1980년대 A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박 어르신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박 어르신은 유모로서 서울 종로구에 있는 A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A씨의 큰 딸과 두 아들을 챙겼다고 한다. 그렇게 박 어르신은 30년 가까이 한 지붕 아래서 지내며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다 A씨의 아이들이 성인이 돼 출가하자 박 씨도 2006년경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수도권 아파트로 독립해 나왔다고 한다.

몇 년 뒤 A씨는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연락이 끊겼던 박 어르신을 수소문했다. 다시 만난 박 어르신은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 게다가 청각장애 4급 진단을 받고 초기 치매 증상까지 생긴 상태였다. A씨는 박 어르신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2014년 서울 성동구 오피스텔을 구입했다. 박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명의는 아들로 해뒀다.

그런데 2021년 A씨의 아들이 박 어르신을 상대로 오피스텔을 비워 달라며 소송을 내면서 부자간 소송전이 시작됐다. 밀린 임차료 약 1300만원을 한꺼번에 지급하라는 요구도 했다. 

A씨는 박 어르신의 성년후견인을 자처하며 아들에게 맞섰고,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법정 다툼 끝에 당연하게도 A씨가 승소했고, 전문직 아들은 오피스텔도 아버지와의 관계도 모두 잃게 됐다.

다만 완전한 권선징악은 아니다. A씨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박 어르신 세상을 떠나면 원래대로 아들에게 오피스텔을 넘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많은 노인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일부 자식들은 ‘부모 재산은 내 재산’이라는 착각 속에 살기도 한다. 부모가 큰 돈을 쓸 기미가 보이면 앞장 서 말리기도 한다. 

노인이 번 돈은 노인들이 전부 쓰는 것이 맞다.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해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이제라도 어르신들이 자신들을 위해 화끈하게 돈을 쓰는 문화가 자리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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