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송년회 덮친 ‘부익부 빈익빈’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송년회 덮친 ‘부익부 빈익빈’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12.26 10:41
  • 호수 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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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12월 첫째 토요일, 친구들과 자주 가는 서울 광진구의 한 소곱창식당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세종시에 살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있어 3시부터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예약은 필자 담당이었는데 식당에 전화를 걸자 “그 시간에는 예약 안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약속 당일 식당에 도착하니 필자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전세를 낸 듯한 기분으로 왁자지껄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고 2차로 옮기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식당을 찾은 추가 손님은 없었다. 계산을 마치고 요새 장사가 안 되냐 물었고, 불황 탓인지 예년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차는 친구 중 한 명이 발견한 근처 술집에서 이어갔다. ‘소주 2500원, 맥주 2500원’이라는 입간판을 문 앞에 세워둔 술집이었는데 속는 셈 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진짜 고물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싸게 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필자 일행이 입장한 시간은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은 초저녁이었음에도 테이블이 절반 이상 찼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금세 만석이 됐고 필자가 떠날 때까지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술집에서 4명이 6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며 꽤 많은 술과 안주를 주문했음에도 10만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2주 뒤 또 다른 지인들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송년모임을 가졌다. 당초 강남 유명 횟집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예약도 안 되고, 퇴근시간 때에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장소를 바꿨다. 서울에서 가장 신선하게 회를 먹을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있다. 역시 예약을 시도했지만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회를 주문하고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역시나 사람들이 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결국 꽤 오래 기다린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연말연시 대목을 맞은 식당가가 파리만 날려 힘들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원인은 고물가로 인해 가벼워진 지갑을 꼽았다. 소곱창처럼 음식 가격이 비싸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은 확실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유명하거나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식당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맞은 연말연시 대목이지만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외치던 시대가 저물고 만족도가 확실해야만 지갑을 여는 이 흐름이 몇 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든 맛이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이는 식당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에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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