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이해충돌”
[백세시대 / 세상읽기] “이해충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12.26 10:58
  • 호수 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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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공문서 위·변조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만연했다. 그 시절의 공문서라면 왕의 공신력과 권위와 직결되는 문서인 셈이다. 공문서에는 어보(御寶·왕의 도장)와 관청의 인신(印信·도장)이 찍혔다. 그런 즉 조선의 공문서 위조는 왕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행위나 다름없었고, 그에 대한 처벌도 최고 수준이었다.

공문서를 위조하는 이유는 신분 상승, 경제적 이득, 면역(免役) 등이다. 특히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컸다. 양인(良人) 중에 극소수는 과거(科擧) 합격을 통해 양반이 될 수 있었지만 대다수에겐 ‘춘몽’(春夢)에 불과했다. 그래서 호적·족보의 위조 등으로 양반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시에 ‘공명첩’(空名帖)이라고 해서 신분과 관련한 문서가 있었다. 나라의 재정을 보충하려고 부유층으로부터 돈이나 곡식을 받고 팔았던 ‘허직’(명예직) 임명장이다. 공명(空名)이란 ‘받는 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이란 뜻이며, 첩(帖)은 ‘사령장’ 또는 ‘임명장’을 뜻한다. 즉 국가에서 매매를 합법화한 문서였다. 

이 문서가 빈번히 위조되자 나라에서 그 대상을 부자들 중심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공명첩의 가격이 상승했고, 반작용으로 저렴한 가격의 위조문서가 횡행했다. 심지어 과거 합격증인 홍패(紅牌)까지 위조했다. 

경아전(京衙前·조선시대 중앙 관청에 소속된 하급 관리)은 담당 업무와 관련한 문서를 위조했다. 이조와 병조의 서리는 고신(告身·1~9품 관원에게 품계와 관직을 수여할 때 발급하던 임명장)등 첩문을 위조했다. 퇴역 후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장례원, 호조, 한성부 등 각 관아의 서리들이 문서 위조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현대에 와서도 단체장의 부정·비리가 심심찮게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 광복회장이다. 국가보훈처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회장이라는 사람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국회 안에 있는 카페의 수익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 또 골재 사업과 관련, 광복회관을 민간 기업에 임의로 사용하게 하는 등의 비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전 광복회장이 국회 카페에서 중간거래처를 통해 허위 발주, 원가 과다 계상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것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으며, 골재 사업 추진에서 공문이 위·변조되었다고 국가보훈처의 감사에 의해 밝혀졌다. 결국 광복회장은 임기를 못 채우고 불명예 퇴진을 했다. 나가는 순간에도 ‘직원 관리를 잘 못했다’며 횡령 등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노인회 회장도 가짜 박사학위 파동에 이어 공문서 위·변조의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르면, 김호일 회장은 한국뇌건강증진운동연합회(이하 뇌건강연합회)란 단체의 제1대 대표직으로 2010년 4월~2023년 5월까지 활동해왔으면서도, 특수 관계인 유경진씨를 지난 5월에 이 단체의 대표로 등록·변경하면서, 최초에 발급 받은 등록증을 위·변조해 유씨가 2010년 4월부터 대표직을 역임해온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김 회장과 유씨가 뇌건강연합회 창립 초기부터 대표와 이사로 활동해온 특수 관계인으로 공문서 위·변조를 주도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4월 29일 당시 김호일 뇌건강연합회 대표는 유경진 ㈜브레인헬스 대표와 뇌헬스운동시스템을 국가 및 지자체에 납품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가 있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김 회장이 뇌건강연합회 대표였단 사실을 감추려 한 건 자신이 대한노인회의 자원과 인력, 국가 예산, 노인지원재단 기금까지 동원해 유씨에게 특혜를 줘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해충돌’이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사적 이익과 공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서로 부딪치는 상황을 말한다.

조선시대 공문서 위조 범죄자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전 광복회장도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다. 김호일 회장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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