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통일시대의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꾸자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통일시대의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꾸자 / 이동순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24.01.02 10:19
  • 호수 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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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노래로

겨레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일제시대, 해방 이후도 널리 불려

아리랑은 남북 단일팀 경기서도

눈물로 함께 부르는 노래 입증

지난 시기 내가 맡은 여러 방송의 고정프로는 대개 가요 관련 프로였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남북이 같이 부르는 노래’를 오래 맡았었고, 내 이름을 내세워 엮어가는 ‘가요 이야기’ 프로도 여러 해를 담당했다. 

그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면서 한 해가 바뀔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새해 첫 아침에 방송할 노래 선곡으로 무엇을 고를 것인가 적절한 작품을 찾지 못해 머뭇거릴 때가 있었다. 그래서 송구영신의 벅찬 감격을 담아낸 노래로 적절한 것을 찾다보니 가장 만만하게 선택된 노래가 ‘내 나라 내 겨레’나 ‘홀로아리랑’ 등이다. 

이 두 곡의 노랫말에도 새해의 밝고 활기찬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대체로 무난한 선곡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내 나라 내 겨레’의 가사는 환하게 떠오르는 동해 해돋이의 기운을 가슴으로 받아서 우리 겨레가 영원무궁토록 번성을 향해 나아가자는 긍정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청년세대에서 한때 제2의 애국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홀로아리랑’의 경우도 독도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떠올리며 우리가 비록 험난한 처지를 살아가지만 반드시 그 고난을 극복하고 활기찬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다짐을 속으로 하게 되는 좋은 노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떠올리고자 한다. ‘아리랑’이야말로 19세기 민족수난기부터 시작된 겨레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원래 강원도의 산간지역에서 초동들이 나무하고 처녀들이 나물을 뜯으며 농민들이 논밭에서 농사일을 할 때 부르던 노래로 시작됐다. 

그러니까 향토민요로 시작되어 ‘아리랑’, 혹은 ‘아라리’로 불려졌다. 그러다가 이 ‘아리랑’은 서울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리면서 한층 다듬어진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그 관련 기록이 황현의 매천야록에 등장한다. 고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동궁을 고치는 토목공사를 했는데 이때 광대들을 불러 흥을 돋우는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했으니 그것이 ‘아리랑’ 타령이었다고 한다. 그 인기가 워낙 높아서 서양인 헐버트는 조선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인상적인 노래 ‘아리랑’의 악보를 자신의 책에 수록하기도 했다. 

나운규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하고 거기 출연하며 ‘본조아리랑’ 노래의 가사를 주제가로 삽입활용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오죽하면 1931년 동아일보 기사에 “반도 천리는 ‘아리랑’으로 덮였으니 고금 동서남북의 ‘아리랑’”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이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지역적 특색을 담은 변형 ‘아리랑’을 산출하기에 이른다. 오죽하면 민요시인 노작 홍사용이 ‘조선은 메나리나라’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삼천리강토가 온통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의 강국임을 확정했던 것인가. 

‘유성기음반 총목록’에 의하면 1920년대 후반엔 ‘아랑타령’ ‘아르렁’이란 제목의 노래가 등장하다가 1929년 영화 ‘아리랑’이 크게 히트를 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아리랑’ 노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요, 민요, 속요, 잡가, 신민요, 유행가, 댄스뮤직, 가야금 잡곡, 영화설명, 극, 향토극, 만곡(漫曲) 따위로 형식의 분화가 이뤄진다. 그만큼 ‘아리랑’ 노래의 세력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래 제목들만 두고 보더라도 ‘아리랑 강남’ ‘아리랑 고개’ ‘아리랑 고개를 넘자마자’ ‘아리랑 낭랑’ ‘아리랑 만주’ ‘아리랑 사시가’ ‘아리랑 삼천 리’ ‘아리랑 세상’ ‘아리랑 술집’ ‘아리랑 애가’ ‘아리랑 애원곡’ ‘아리랑 우지마라’ ‘아리랑 코러스’ ‘아리랑 풍년’ ‘그리운 강남’ ‘그리운 아리랑’ ‘목동 아리랑’ 등등 다양한 제목들로 ‘아리랑’ 노래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져서 ‘함께 아리랑’ ‘아리랑 너랑 나랑’ ‘꿈의 아리랑’ ‘금강산 아리랑’ ‘희망의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랩소디’ ‘통일 아리랑’ ‘사랑의 아리랑’ ‘아리랑 코리아’ 등으로 나타나며 ‘아리랑’ 테마 노래는 이제 하나의 전통적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하나의 제의를 하고자 한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을 통일시대를 맞이하며 우리나라의 국가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많은 염려를 내포하고 있다. 

일단 작곡가 안익태의 생애와 관련된 문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사항들, 현행 애국가의 가사가 남북한 겨레를 두루 아우르지 못한다는 점, 여기에다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대목이 보여주는 지속적 마모와 소진에 대한 이미지의 한계 따위가 항시 지적되고 있다. 북한은 그들대로 별도의 국가를 제정해서 쓰고 있다. 남북이 하나 되는 감격의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 어떤 주저함도 없이 ‘아리랑’을 국가로 제정하기를 추천한다. 

통일시대 이후에는 현행 남북한이 사용하는 국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즉시 폐기해야만 한다. 그때 우리가 뜨거운 가슴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 이외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그 가능성을 진작부터 경험해왔다.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경기에 출전했을 때 이 ‘아리랑’은 눈물로 함께 부르던 겨레의 단합된 노래였다. 뿐만 아니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부르던 노래도 ‘아리랑’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품고 있는 값진 노래 ‘아리랑’을 더욱 다듬고 관리해서 한층 승화된 겨레의 노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잘 유지하고 갈무리해야 하리라. 새해 아침에 우리의 애국가를 ‘아리랑’으로 바꾸어 제정하자는 뜻을 정중하고도 엄숙한 마음으로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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