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 | 준비됐나요? ➊] ‘디지털 약자’ 노인 위한 ‘예약 배려’가 없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 | 준비됐나요? ➊] ‘디지털 약자’ 노인 위한 ‘예약 배려’가 없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1.08 09:12
  • 호수 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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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로 예약 못하면 식당‧병원 한참 대기… 영화‧공연도 쉽게 못봐

노인 급증하는데 공공연한 차별… “일정부분 오프라인구매 할당을”

지난 9월 서울 영등포구지회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이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고령층도 영화, 공연, 전시 등 대중문화 소비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빠른 디지털 전환에만 몰두하고 디지털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어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9월 서울 영등포구지회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이 단체로 영화 관람을 하고 있다. 이처럼 고령층도 영화, 공연, 전시 등 대중문화 소비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빠른 디지털 전환에만 몰두하고 디지털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어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1. 지난해 연말 친구들과 모임을 마친 A어르신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섰다. 많은 택시들이 ‘예약등’을 켠 채 A어르신을 줄줄이 지나쳤다. 30분 넘게 추위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A어르신은 젊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카카오택시’를 통해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2. B어르신은 최근 서울의 한 유명식당을 찾았다. 30팀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주변에는 B어르신 일행을 제외하면 10팀도 되지 않아 금방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에 B어르신 보다 늦게 도착하고도 ‘예약 어플’을 활용해 먼저 입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두 사례는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디지털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현재 대부분의 식당은 무인주문기(키오스크)를 도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플을 이용하는 예약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또 영화‧전시‧스포츠 관람을 위해선 온라인 예매가 필수가 되고 있지만 정작 노인에 대한 배려가 적어지면서 여러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막을 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29년이나 걸린 LG트윈스의 우승 등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그중에 눈길을 끈 것은 관람 티켓을 전부 온라인 예매로 판매하면서 벌어진 노인 차별 논란이었다. 한국시리즈 경기는 온라인에서 사전 예매가 이뤄졌고 취소된 표만 현장에서 판매했는데 이를 구매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40대 시절 응원하던 팀이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것을 본 후 노인이 돼 우승의 순간을 다시 함께 하려했던 많은 고령 팬들이 현장에서 취소표를 기다리다 끝내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시 많은 고령 팬들은 “현장 판매를 10%라도 했다면 전날부터라도 기다렸을 텐데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풍경은 전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막을 내린 한 미술전시회의 경우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30분 단위로 일정 인원만 온라인 예매를 받았는데 일찌감치 매진이 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물론 현장 예매로도 표를 구입할 수 있지만 오전에 전시장에 도착하더라도 한참을 기다린 후 오후 입장이 가능한 표 밖에 구하지 못했다. 전화 예매는 단체 예약만 가능해 이조차 이용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일부 고령자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화 예매도 마찬가지다. 극장들은 현장과 온라인 등 예매 경로를 다양화해 인기 영화라도 보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극장 경영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부터다. 인력을 줄이기 위해 현장 예매도 키오스크로만 가능하게 바꿔나가면서 불편함을 겪는 고령자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요식업과 병원 예약 등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서 밝혔듯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모바일 번호표를 받아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예약 어플’을 사용하는 식당이 많아지고 있다. 예약 어플은 방문을 원하는 점포나 병원의 대기번호표를 모바일로 받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로 ‘캐치테이블’, ‘똑당’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캐치테이블을 이용하면, 제휴를 맺은 음식점에 입장 대기 현황을 확인할 수 있고 모바일 번호표를 받을 수 있다. 가령 대기 인원이 많아 1시간 뒤에 입장이 가능한 것을 미리 파악해 예약한 후 10분 전 도착해 현장에서 대기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예약 어플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디지털 사용 능력이 뒤처지는 노인들은 현장에 일찍 도착하고도 대기 순번이 한참 밀리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국감에서는 심지어 일부 병원이 어플을 통한 예약자가 많을 경우 현장 접수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 지적받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차표 일부를 오프라인으로 열어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처럼 일정 부분을 전화나 현장에서 구입하도록 할당하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코레일은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2024년 설 승차권 예매를 시작하는데 온라인(PC, 모바일)뿐 아니라 전화(고객센터)로도 가능하게 했다. 코레일은 경로·장애인·국가유공자(교통지원대상) 등 교통약자의 예매 편의를 높이고자 8일과 9일 이틀간 별도 예매를 진행하는 등 판매 좌석 비율과 일정 등을 조정했다. 

또 교통 약자 할당 좌석 비율을 10%에서 20%로 확대하고, 전화예매와 인터넷 예매 전용 할당을 각 10%로 나눠 매체별 예매 기회를 확대했다. 이와 함께 교통약자를 위해 온라인으로 쉽고 편하게 승차권을 예매할 수 있도록 동영상과 안내책자를 제작·배포했다. 동영상은 홈페이지(letskorail.com)와 유튜브(한국철도TV),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 등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은 △철도회원 가입 방법 △전화 예매 절차 △출발·도착역, 날짜, 시간, 좌석 선택 △승차권 결제·변경·취소 등이다. 매체에 따라 각 단계별로 따라만 하면 열차표를 예매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는 “디지털사회에서 이용에 제한이 크다면 권리가 제한받는 것과 같다”면서 “70세 이상 노인들은 디지털 교육을 제대로 받기 어렵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오프라인 서비스를 병행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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