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57] 영조와 사도세자의 다정했던 시절, 영조 “오늘 동궁이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인문학 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57] 영조와 사도세자의 다정했던 시절, 영조 “오늘 동궁이 책을 읽고 싶어 한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1.15 13:48
  • 호수 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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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의 사도세자가 쓴 글씨, 신하들 서로 받으려 해  

‘동몽선습’에 나온 어려운 한자 기억하자 흡족한 영조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조와 세자도 한때는 다정한 부자 사이였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조와 세자도 한때는 다정한 부자 사이였다.

[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영조(조선 21대 왕·1694~1776년)는 아들 사도세자(1735~1762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들 부자에게도 여느 아버지, 아들과 다름없는 다정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부자지간이 어느 순간, 누군가에 의해 어긋나고,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은 세자가 뒤주 안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는 끔찍한 결말을 맞았던 것이다.

승정원일기에 영조가 어린 사도세자를 데리고 창덕궁 양정함에서 부정(父情)이 넘치는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읽다보면 영조가 역대 어느 왕보다 세자에 대한 사랑이 따뜻하고 기대가 컸음을 느끼게 된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국정과 관련된 내용을 일기 형태로 기록한 책이다. 국보 303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보물이다.

1738년 1월 21일,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영의정 이광좌, 영중추부사 이의현, 관중추부사 서명균, 우의정 송인명, 부원군 어유귀, 청양군 유엄, 세자시강원 사서 김상구 등이 함께 한 자리였다. 

◇온화하고 지혜로운 세자

•이광좌: 오늘은 먼저 용안을 살피고 다음에 동궁을 살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영조: 그리하라.

•이광좌: 동궁의 안색은 전보다 더 발그레하고 윤기가 흐릅니다.

•영조: 그렇다.

•이광좌 : 오늘 동궁이 책을 읽으려고 할지요?

•영조: 오늘 동궁이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이광좌: 큰 소리로 시원하게 읽을 수 있겠지요?

(동궁이 나지막한 소리로 글을 읽었다.)

•영조: 동궁 소속 관원 한 사람이 나와서 글 읽기를 도우라.

(김상구가 나와 엎드렸다.)

•김상구: 신들이 먼저 읽어야겠지요?

•영조: 네가 먼저 읽겠느냐?

(동궁이 대답하지 않았다.)

•영조: (웃음을 지으며) 네가 먼저 쓰겠느냐?

(내시가 종이 2장과 함께 붓과 벼루를 가져왔다. 동궁이 붓을 잡고 글자를 썼다.)

•영조: (웃음을 지으며) 글자 쓰는 건 어려워하지 않은데 글 읽는 건 몹시 싫증을 낸단 말이야.

•이광좌: 신이 사부로 있으니 오늘 쓴 글씨를 받고 싶습니다.

(영조가 동궁에게 하교하였다.)

•영조: 글씨 쓴 종이를 네 스승한테 갖다 드려라.

(동궁이 즉시 일어나 이광좌에게 직접 주었다. 이의현과 서명균이 잇따라 서로 글씨를 달라고 청하였다. 동궁이 다시 글씨 쓴 종이 한 장을 어유귀에게 주었다.)

사도세자가 겨우 4살 때 일이다. 큰소리로 책을 읽어 보라는 스승의 권유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책을 읽을 만큼 어렸다. 이날 신하들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는 법을 얘기하면서 한편으로 영조의 성격에 대해서도 직언했다. 

•이광좌: 동궁이 일찌감치 온화한 모습을 갖추고 슬기로운 지혜를 이루었으니 훗날 조금만 노력해도 크게 이룰 것입니다. 종묘사직을 생각할 때 더없이 큰 기쁨과 경사입니다. 다만 어린 사람에게 올바름을 길러줄 때에는 솔선해서 가르치는 것 만한 일이 없습니다. 비록 어리긴 해도 반드시 바르고 공경스러운 태도로 성취해 나가기를 신은 바랍니다.

•영조: 맞는 말이다.

◇왕에게 감정 조절하라고 직언

•서명균: 말은 법도가 되고 행동은 모범이 되는 것이니만큼 오늘날 동궁을 인도하는 방법으로 전하께서 솔선수범하시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평소 감정 조절을 잘 못하시는 점이 많으니 신은 우선 성상께서 돌이켜 보시어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송인명: 슬기로운 자질을 성취하는 데는 바른 사람을 궁관으로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반드시 잘 선택하여 오랫동안 담당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 임: 신은 마음속으로 늘 종묘사직을 근심해 왔는데 오늘 연석에 나와 동궁의 총명한 모습을 보니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종묘사직을 생각할 때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741년 6월 22일 미시(오후 1~3시), 영조는 경덕궁 경현당에 나가 도승지 권적, 좌승지 김상성, 여러 승지와 옥당의 관원 등이 있는 자리에서 왕세자에게 ‘동몽선습’을 읽도록 명했다. 그리고 세자시강원 필선인 박필간에게 동궁이 읽은 곳 중에 어려운 글자를 골라 물으라고 명했는데 세자가 묻는 글자마다 정확하게 짚어냈다.

•박필간: 어떤 자가 귀(貴)자입니까?

•세자: (글자를 가리키며) 이 자.

•영조: 보(輔)자가 어려울 것 같으니 한 번 물어보라.

•박필간: 어느 자가 보자입니까?

•세자: (책장을 한 줄 한 줄 자세히 보더니 이내 손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자.

•영조: 배운지 여섯 달이나 지났는데도 잊지 않았구나.

이때가 사도세자의 나이 일곱 살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세자는 뒤주에 갇혔다.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가.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이 발간한 ‘후설’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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