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95세 노인의 이사(移徙)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95세 노인의 이사(移徙)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1.22 10:09
  • 호수 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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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1월 16일 필자는 하루 휴가를 내고 장모님과 장조모님의 이사를 도왔다. 지난해 따로 살 던 두 분이 같이 살기로 결정했고 각자 살던 집을 정리해 이날 동시에 이사를 진행한 것이다. 3년 전 노인연령에 진입한 장모님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해 딱히 도와드리지 않아도 됐지만 문제는 장조모님이었다.

1929년생인 장조모님은 집안에서는 혼자서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 왔지만 외출 시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게다가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낙상 예방을 위해서 필히 1~2명이 붙어 있어야 한다. 

당초 이날 계획은 이랬다. 이사가 시작되면 차로 장조모님, 그리고 장조모님을 돌보기로 한 아내와 처제를 카페에 데려다주고 필자는 다시 집으로 이동해 이사 과정을 지켜보는 거였다. 장조모님과 함께 주차장으로 이동할 때만해도 수월했는데, 차 문을 열자 첫 번째 문제가 터졌다. 필자의 차는 SUV로 세단 승용차보다 차체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아이도 쉽게 탈 수 있다. 그런데 거동이 불편한 95세 노인에게는 거대한 담장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차에 타는데 성공했고 카페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이제 내리셔야 한다”고 말하자 장조모님의 답변은 또 예상을 빗나갔다. “차에 다시 타기 힘들어서 내리기 싫다”고 한 것이다. 결국 네 사람은 계획에 없던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장모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매도용 인감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장조모님이 직접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조모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인근 행정복지센터로 이동했다. 장조모님이 내려서 최대한 적게 걸으려면 장애인 주차공간에 임시주차를 해야 했다. 여기서도 잠시 갈등했지만 필자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댈 권한이 없었고 결국 다소 긴 거리를 걸어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인이 하차할 때만이라도 장애인 주차공간에 정차하도록 할 필요성을 느낀 순간이었다.

인감증명서를 발급받는 것도 고난이었다. 발급과정에 반드시 지문 인식을 해야 하는데 노화로 지문이 옅어져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이런 사항에 대비한 매뉴얼이 구비돼 있었다. 당황한 필자와 달리 담당 공무원은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관계를 확인한 후 발급해준다”고 설명하며 장조모님에게 인적 사항과 관련된 질문을 했고 발급받는데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긴 했지만 이사는 결국 무사히 끝났다. 또 우리 사회가 아직 고령의 노인이 살아가기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특히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노력이 필요하다. 우산보관대는 있지만 지팡이보관대가 없어서 식사할 때마다 거슬리는 문제는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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