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노무현의 ‘라면 사랑’”
[백세시대 / 세상읽기] “노무현의 ‘라면 사랑’”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1.22 10:37
  • 호수 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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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존경 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이 노무현(1946~2009년)이다. 재임 당시 혹평을 했던 보수논객들조차 최근에는 노 대통령의 솔직하고 서민적이며 민주적인 통치 행위를 찬양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청와대 조리실에서 5명 대통령의 삼시세끼를 챙겼던 한 요리사의 책 ‘대통령의 요리사’(쌤앤파커스)가 화제다. ‘요리 명장’이라고 불리는 천상현 전 청와대 총괄조리팀장이 주인공이다. 30대에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일하다 중식을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 추천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50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식탁을 마지막으로 차려주고 나왔다고 하니 이 요리사만큼 오랜 세월 대통령 식탁을 지킨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밝힌 역대 대통령들의 음식 습성 가운데 노 대통령의 ‘라면 사랑’이 눈길을 끈다. 

청와대 운영관에서 일요일 아침은 대통령이 직접 라면을 끓이니 준비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신 가족식당 주방 한편에 필요한 재료와 가스버너만 준비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모시는 입장에선 손수 라면을 끓여 드신다는 게 걱정 돼 홀과 주방에서 책임자가 교대로 한 명씩 나와 대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번째 일요일 아침. 재료는 전날 미리 준비해 가족식당에 비치해놓았다. 대통령이 평소 즐겨 드신 라면은 여유분을 포함해 4개씩 준비했다. 그 외에 작은 냉장고에 계란 3개와 어슷썰기 한 파 그리고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홀 서빙 직원 1명과 요리사 1명이 항시 대기했다. 혹시나 대통령 눈에 띌까 로커 룸에 몰래 숨어 있는 식이었다.

노 대통령은 “나한테는 이 음식이 입맛이 없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대개 아침 7시, 낮 12시, 오후 6시 반 이렇게 식사시간을 철저히 지키려 했다. 보통 대통령이 외부 식당에서 밥을 드실 때는 참모진과 함께 별도의 룸에서 드신다. 그 외 인력은 다른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취임 후 첫 설 연휴에 저도를 찾았을 때는 달랐다. 그날 갑자기 주방에 있던 우리까지 모두 부르시더니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식당 주방에 들어온 비서관이 “대통령님께서 경호원을 비롯한 필수 인원만 빼고 다 들어와 함께 식사하자고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식당 가장 큰 방에 참모진들과 함께 앉아있던 대통령은 주방 식구들이 문 앞에서 쭈뼛대자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노 대통령은 “어서들 와요. 다 같이 밥 먹읍시다”라고 말한 후 거제 인근 해역의 바다목장 이야기를 하며 식사 내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평소에도 청와대 곳곳에서 직원들과 편하게 대화하곤 해 그런 노 대통령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삼계탕을 즐겨 드셨다. 특히 청와대 근처에 위치한 서울 4대 삼계탕 맛집 ‘토속촌’을 비서진과 자주 찾았다. 평소에도 삼계탕이 드시고 싶다면 식당에 찾아가 포장된 음식을 공수해오기도 했다. 매번 사오기보다는 토속촌의 레시피를 얻어다 조리실에서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토손촌에 의뢰했으나 그쪽에서 대통령을 위한 요리라고 해도 레시피를 알려줄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청와대 조리사들이 독자적으로 연구해 삼계탕을 만들어 대통령께 드리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 외에도 대구탕, 민어매운탕 등 탕 종류와 얼갈이해장국, 순대국, 설렁탕 등 국밥 종류를 좋아했다. 대구탕에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면 맛이 없어진다”며 “딱 무하고 파만 넣으면 된다”고 했다. 해물파전을 안주 삼아 충청도 막걸리를 즐겨 마시곤 했다.

저자는 “역대 대통령들은 운영관이나 홀 비서를 통해 음식이 맛있다는 말씀을 하는데 주방을 일부러 찾아와 맛있게 먹었다고 요리사를 칭찬한 분은 노무현 대통령 뿐”이라며 “청와대에서 제사를 지낸 분도 노 대통령이 유일했다”고 기억했다.

요리사에게까지 인간적으로 친근하게 대한 노 대통령이었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으로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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