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어리석은 병?… “명칭 변경 필요” 한 목소리
‘치매’는 어리석은 병?… “명칭 변경 필요” 한 목소리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4.01.22 14:21
  • 호수 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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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이름 유래와 대체방안

부정적 인식 유발해 개정 필요… 편견과 차별 불러오지 말아야

정부도 용어 개정에 공감… 인지저하증·인지증 등 대체안 검토

[백세시대=배지영 기자] 우리 사회에서 치매는 더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중앙치매센터에 등록된 60세 이상 치매 환자가 102만여명에 이를 정도로 국내 치매 환자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치매 주치의 제도를 시범 도입한다고 한다. 전문의 등이 치매 환자의 건강 전반을 관리하도록 하는 사업으로, 치매 환자 가족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이런 불안만 덜어줘도 국민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치매의 명칭 문제다. 퇴행성 뇌질환을 폭넓게 일컫는 치매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가 이어진 한자어로, 부정적 편견을 키우고 환자와 가족에게 모멸감을 안겨준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올해 안에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행정 용어로, ‘치매’를 대체할 용어를 확정해 새롭게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치매 용어의 유래와 대체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치매 용어의 유래

치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 전부터, 치매라는 질병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해왔다. 단지 이에 대한 정의나 명칭이 없었을 뿐이다. 

치매라는 용어는 ‘dementia’(정신이상)라는 라틴어 의학용어의 어원을 반영해 ‘어리석다’란 의미의 한자로 옮긴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 전해 받고 해당 한자어를 우리 발음으로 읽어 지금까지 사용해왔다.

치매에서 癡(치)와 呆(매)는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특히 癡(치)는 ‘병들어 기낼 녁(疒)’과 ‘의심할 의(疑)’로 이뤄져 있다. 疒은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疑는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과 글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을 헤매는 노인 또는 의심하고 있는 노인을 표현하고 있다. 呆는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 또는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로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행했음을 의미한다.

양현덕 광교신경과의원 원장은 “결국 치매라는 단어는 지남력과 공간기억력이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 증상과 의심이 지나쳐 병적 망상을 보이는 치매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치매 명칭 변경

병명은 질병의 본질을 잘 드러내야 함과 동시에 편견과 차별을 불러오지 않아야 한다. 질병이 본질과 무관하게 단지 차별적 병명으로 인해 그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져 사회적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치매 용어가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치매 용어를 변경해야 하는 이유에는 ▲‘용어가 이미 부정적 편견이 생겼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58.6%로 가장 높았으며 ▲‘치매 환자를 비하(卑下)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가 16.5% ▲‘용어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가 13.4%로 나타났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치매 명칭을 개정하고,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 의료계, 돌봄·복지 전문가 및 치매 환자 가족단체 등 10여 명이 참여하는 ‘치매 용어 개정 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했지만 현재까지 치매 용어는 개정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올바른 대체용어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만, 일본, 홍콩, 중국은 ‘치매’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과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실지증’, ‘인지증’, ‘뇌퇴화증’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대만은 지난 2001년에 ‘치매증’을 ‘실지증’으로 개정했으며, 일본은 2004년에 치매를 ‘인지증’으로, 홍콩은 2010년에 ‘치매증’을 ‘뇌퇴화증’으로 대체했다. 중국도 뒤를 이어 2012년에 ‘뇌퇴화증’으로 병명을 바꿨다.

국내에서도 복지부가 지난 2021년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치매를 대체할 용어로 ‘인지저하증’(31.3%)을 꼽은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기억장애증(’21.0%), ‘인지장애증’(14.2%)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대체 용어로 ‘인지증’, ‘인지저하증’, ‘인지병’이 최종 후보군으로 검토되고 있다.

뇌전증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 오래도록 ‘간질’(癎疾)이라고 불렸다. 미디어에서는 이 간질을 입에서 거품이 나오거나, 쓰러져 몸을 심하게 떠는 경련으로 나타내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이에 대한뇌전증학회는 질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명칭을 공모했고 ‘뇌에 전기적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라는 의미로 뇌전증을 선택했다. 이는 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앤 사례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복지부는 “치매 대체 용어에 대한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이번 용어 개정이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치매 친화적 지역사회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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