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2] 아버지의 난초 화분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2] 아버지의 난초 화분
  • 관리자
  • 승인 2024.01.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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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이경애] “이거 내다 버려라. 다 죽은 걸 그대로 두는 게 아니다”하며 엄마가 역정이다. 베란다에 있는 아버지의 난초 화분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잎이 진녹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난 줄기가 힘이 있었다. 

해마다 하얀색의 꽃이 피면 아버지는 지인을 초대해 난 꽃을 감상하고 묵화를 치셨다. 아버지가 가시고 언젠가부터 시들한 게 죽을 듯 죽을 듯하며 힘없이 바람에 움직이고 있는 난 화분을 엄마는 유달리 싫어하신다. 

오늘도 빨래를 널기 위해 베란다로 나가는 내 뒤통수에 엄마의 칼날 같은 목소리가 꽂힌다. “오늘 안으로 내다 버리지 않으면 내가 버린다.” 

2018년 5월 21일 밤 11시 25분,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기척을 들으며 잠을 청하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나올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방을 나가 보니 화장실 문이 평소와 달리 비스듬히 닫혀 있고 그 틈에서 가느다란 빛이 나오는데 서늘한 느낌이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변기에 앉은 채로 엄마가 의식이 없었다. 혼자서 열리지 않는 문과 전쟁을 치르고 엄마를 바로 눕히느라 전쟁을 치르며 119를 불러 해운대 백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기도삽관, 응급 시술, 인공호흡기, 내과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옮겨 4개월을 보내셨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엄마의 병실 앞 복도에서는 언제나 소리가 났다. 환시가 나타나고 나를 부르는 소리, 멀리 있는 아들을 부르는 소리, 잠을 자게 해 달라는 소리…. 의사는 섬망이라고 했다. 신체가 회복되면 섬망은 없어질 거라 했다. 

섬망으로 끝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2018년 9월 10일 퇴원을 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음 해 초봄 혈관성 치매,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과거 기억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드라마를 본다. 밤에도 드라마를 보고 낮에도 드라마를 보고, 잠이 들었다가도 드라마를 켠다. 드라마를 켜고 잠이 든다. 

한걸음이라도 걷게 해보려는 나와 드라마 앞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엄마의 신경전이 자주 일어난다. 아침에는 베란다로 나가 죽을 듯 죽을 듯 살아있는 아버지의 난 화분을 치워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호흡이 거칠어진다. 다행히 잠이라도 들면 그나마 쉴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온다. 나는 쉬는데 엄마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까? 

엄마 설득, 인지재활프로그램 참여

엄마와 밥을 같이 먹고 아침에 햇볕을 쬐게 하고 몇 걸음 걷게 하는 것이 나의 큰 일과가 됐다. 엄마한테 무언가가 정말 무언가가 꼭 필요했다. 그러던 중 치매안심센터의 치매환자를 위한 인지재활프로그램인 쉼터사업을 알게 됐다. 

그러다 쉼터 교실에 전시된 어르신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긴 세월 살아오면서 항상 하셨을 화분 물주기, 아득한 시절 만져봤을 색연필, 크레용으로 밝게 칠하고 만들어가며 얼마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을지 상상이 됐다.

누구보다도 이런 것이 엄마에게 절실했다. 그러나 가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는 게 큰 문제였다. 억지로 가다가 스트레스로 호흡이 나빠질까봐 두려웠고, 엄마가 신체적으로 일주일 내내 견뎌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이런 불안을 가득 안고 9월 입학을 했다. 하루를 다녀오고 이틀째 가지 않으려 하는 엄마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청력 저하로 내가 옆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기도 하면서 나도 엄마 옆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교구 놀이도 하고 편 나눠 게임도 했다. 

2주일이 지나면서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됐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두는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여는 듯했고, 수업 내용에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학교에 늦으면 안 된다며 밤에는 주무시려 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신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은 엄마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던 불면과 호흡곤란의 악순환이 옅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과거 이야기도 더 이상 하지 않으시고 어쩌다 말을 하면 담백하게 표현하고 넘어가신다. 나는 이런 모든 변화가 정말 감사하다.

엄마가 표현을 잘하지 못하지만 쉼터 교실에 가는 것, 만드는 것, 화분 심기 등에 흥미를 느끼고 때로는 즐거워하신다. 엄마에게는 정말 꾸준하게 해야 할 필요한 교육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이젠 학교 가듯 쉼터 교실 출석

아침 아홉 시, 쉼터 교실에 들어서면 맨 처음 환한 웃음으로 일일이 맞아주는 두 분의 작업치료사 선생님 표정에서 엄마는 아득한 교실, 학교 선생님께 느꼈던 신뢰와 용기를 얻는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또한 교육 오시는 선생님마다 열과 성을 다해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려 노력했다. 느린 속도지만 어르신들에게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지기능이 약해져 가고 신체도 나날이 힘이 빠져 가지만 그래도 삶과 이어진 끈을 꼭 잡고 있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학교에 오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그 노력에 눈물이 나고 또 존경스럽다. 

어제는 엄마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초조하게 이 방 저 방 찾아도 안 보여 덜컥 겁이 났다. ‘혹시 현관문을 열고 나갔을까. 나가면 주소를 모르는데.’

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하며 큰소리로 “엄마” 하고 한 번 더 부르자 베란다 장독 옆에서 “왜” 하는 대답이 들렸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엄마가 등을 돌리고 앉아서 아버지의 죽을 듯 죽을 듯하며 살고있는 난 화분에 물을 주고 계셨다. “이게 꽃이 피면 하얗고 예쁘다”라고 하시며…. 그러고 보니 착각인지 난 줄기의 색깔이 다소 짙어진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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