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도전, 2024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도전, 2024 / 신은경
  •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 승인 2024.01.29 11:29
  • 호수 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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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딸의 도전에 자극받아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모닝페이퍼 쓰고, 경필대회 응모

그러다 생애 처음 ‘낙상’을 경험

이제 깁스 풀고 새해 재활에 도전

나의 딸은 지난해 2023년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으면서 스페인어 연극의 연출 보조를 해보기도 하고, 복싱을 시작했고, 달리기를 더 오래, 더 길게 하고 있다. 

겨울의 끝에는 보스톤으로 가서 임윤찬의 연주를 보기로 했다. 여름부터는 일본어를 조금씩 시작하고 있고, 묵상집을 읽고 녹음해 부모님에게 보내준다.

딸에게 도전받아 나도 세상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에 도전해보려 마음을 먹었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제안한 대로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매일 아침 하루에 세 페이지씩 쓴다. 그 날 내 안의 생각, 떠오르는 영감, 불편함, 꿈 이야기, 계획, 염려, 걱정, 분노까지도 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이니 솔직하고 정직하게 내 안의 것을 꺼내놓는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내 안에 살고있는 어린 크리에이터를 발견하고 키워보려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도전은 한 해 한가운데 시작됐다. 언어 공부 앱을 통해 프랑스어를 독학으로 익히고 있다. 하루 15분 정도만 쓰면 되는 일이라 마음은 가볍고, 특히 좋은 점은 특별한 목적이 없이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험도 없고, 자격증을 딸 필요도, 여행을 가서 말하려는 목적도 없이 공부하기 때문에 부담이 눈곱만큼도 없다. 단지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해야 하는 것이 조건이다. 한 해 정산을 해보니 195일을 공부했다. 

한 문구회사에서 주최하는 경필 대회에 응모한 적도 있다. 제시하는 문구를 손글씨로 써서 보내는 것. 결과는 1차 낙방. 합격자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합격자 리스트에 내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이 나이에 손글씨를 써서 대회에 응해 보다니. 그리고 그 결과가 궁금해 이렇게 찾아보고 있다니.

‘내 글씨가 어때서 1차에 낙방을 하냐? 내가 명필은 아니라도 달필인데’ 하고 투덜댔지만, 그래도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해봤다는 점에서 지극히 칭찬할 일이었다. 딸에게 보고했더니, ‘엄마도 참....’ 한다. 가까이 있었으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것 같은 말투였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엄마가 기특한 모양이다.

지난 12월에는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교통카드를 받았다. 65세 생애 전환점에 들어선 것이다. 지하철을 탈 때 빨간 불이 들어오는 이 카드를 사용하기가 민망하면 그냥 유료 신용카드를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어른의 나이로 들어선 책임감과 더불어, 나이 듦도 누리고 싶은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교통카드를 받은 다음날, 세상 태어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또 하나 저지르고 말았다. 평소 무척 조심스러운 편인데, 집안에서 그만 낙상을 하고 만 것이다. 베란다에서 시원한 과일 몇 개를 집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TV에서는 큰소리로 9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70대 여성 세 명이 목욕탕에서 감전돼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었다. ‘저런 저런,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무 슬퍼...’ 하는 순간, 시선은 TV 화면을 향하고 있어 바닥에 있던 물건을 미쳐 보지 못했다. 걸려 휘청하며 넘어지고 말았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넘어지며 왼쪽 무릎에 온 체중이 다 실렸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급히 얼음찜질을 했지만, 얼마나 아픈지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이러다 낫겠거니 싶어 파스를 붙이고 절뚝이며 미련하게 사흘을 보냈다. 

결국, 응급실로 가 엑스레이, CT를 찍고 무릎뼈 골절, 연골 파열, 석고붕대 한 달 판정을 받았다. 거짓말 같이 믿을 수 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동안 그렇게 조심하며 살았는데, 어떻게 다리 하나를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무거운 석고붕대로 묶고 절뚝이며 살 수 있단 말인가.  

아주 불편하고 우울한 3주가 지나고, 드디어 석고 깁스를 열었다. 전동 톱으로 양쪽을 잘라 풀어내니 3주 동안 빛을 못 본 가느다랗고 새파란 내 왼쪽 다리가 빛 가운데 드러났다. 많이 허약해졌지만, 앞으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런데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골절된 뼈 끝에 동그란 작은 돌기가 생겨난 게 보였다. 뼈 스스로 회복의 제스추어를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거다. 내가 찾던 교훈. 깨어지고 부서져도 회복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한 번 부러졌던 곳은 더 강해져 다시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났다. 우리 인생도 좌절과 고난이 오지만, 우리에겐 회복의 능력이 있고 재생의 의지가 장착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다리 부상으로 우울한 새해를 맞았지만 소중한 교훈으로 인생의 밝은 면을 바라보게 됐다. 새해 나의 도전은 이제 단순 명료하다. 재활을 위해 더 열심히 건강에 정성을 쏟아 보는 것. 이 또한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안 해본 일에 도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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