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4] 고통과 좌절에서 희망으로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4] 고통과 좌절에서 희망으로
  • 중앙치매센터
  • 승인 2024.02.19 09:29
  • 호수 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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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정현희] 그 어느 날…. 이미 예고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심장약을 복용했지만 이날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날 갑자기 구토와 어지럼증, 모든 음식의 거부감이 오기 시작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을 하게 되었고 투석을 시작할 준비를 하라는 말에 너무 절망적이고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수술을 하고 복막투석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그 후로부터 2년이란 시간 동안 수많은 고통과 좌절로 대인관계 기피와 우울증이 심해지고 몸무게는 20kg 이상 불어나 외출은커녕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급기야 음식을 거부하는 섭식장애까지 와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길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복막투석에 치매증상까지 겹쳐

그러던 어느 날, 손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고 기억이 나지 않는 증상이 심해지면서 신경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국 치매약을 처방받았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졌다. 절망적이었다.

나 자신도 고통스럽지만, 가정을 도맡아 살림을 하던 엄마인 내가 이 상태가 되니 얼마나 식구들이 힘들었겠나 싶었다. 그러던 중 하루에 4번씩 하던 복막투석이 일주일에 3번 받는 혈액투석으로 바뀌게 되면서 외출도 조금씩 하게 되었고 남편의 지극정성인 간호를 받으며 점차 안정을 찾았다. 

그런데 때 아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남편이 빙판에 넘어져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었고, 심한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보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간병인을 자처하며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고 모든 병간호를 도맡아 해주던 남편이 저리 누워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뇌 손상으로 인지저하가 심해 여기가 어딘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이 며칠인지 모르는 남편을 한 달간 정성껏 돌본 아들과, 집과 병원을 정신없이 다니며 부모를 돌본 딸의 정성으로 뇌출혈이 멎으면서 남편은 한 달 만에 퇴원을 했다.

돌봐주던 남편, 낙상으로 뇌 손상

아기처럼 행동하는 남편. 걷다가 넘어진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장아장 걸으며 무서워하고 섬망 증세를 보이며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내 남편은 나와 같은 치매 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 나를 위해 매끼 따뜻한 돌솥 밥을 짓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주던 자상한 남편이 꼭 회복되길 기도했다.

인지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던 딸이 치매안심센터에 데려다줬다. 우리는 함께 수업을 받는다. 원예 수업, 미술 수업, 운동 수업 등 재미있고 즐거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이곳을 남편과 나는 ‘학교’라고 부른다.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은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혹시라도 늦을까 서두른다. 나는 관절염과 허리(척추관)협착증으로 곧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남편의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꼭 참석하고 싶다. 

아침 일찍 모이는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도 학교생활 중 좋아하는 시간이다. 자상한 선생님들은 늘 고마우시다. 늘 편안하고 즐거운 수업으로 이끌어주신다. 

부부가 함께 인지치료 활동

하루하루 나와 남편의 작품이 늘어 간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고 가족들 또한 멋지게 봐주니 뿌듯하고 보람이 있다. 주말이면 빨리 월요일이 오길 바란다. 학교에 가니까.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아팠을 때 글씨를 쓰려면 벌레가 기어가듯 그렸는데 지금은 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치매안심센터의 많은 분들과 수업해 주시는 두 분 선생님, 매일매일 오셔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께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런 좋은 환경의 배움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치매안심센터가 생김으로써 큰 도움을 받은 나와 같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고 수기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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