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미술관 ‘오사카 파노라마’ 전, 100세 화가가 빛과 그림자로 만든 신비한 세계
세종미술관 ‘오사카 파노라마’ 전, 100세 화가가 빛과 그림자로 만든 신비한 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2.26 13:22
  • 호수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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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회화’ 창시 후지시로 세이지 조명… ‘선녀와 나무꾼’ 등 220여점

초기 모노크롬 작품부터 홍해 가르는 모세, 금각사 등 일본 명소 눈길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자 회화(카게에)를 창시한 일본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변천사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월광의 소나타’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자 회화(카게에)를 창시한 일본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변천사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월광의 소나타’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빛과 그림자는 태양과 달, 불과 같은 자연과 우주의 근원으로 인간과 통하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지시로 세이지가 한국 관람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지난 2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전시장 초입에는 올해 100세를 맞은 후지시로 세이지가 직접 쓴 자필 인사말이 걸려 있었다. ‘그림자 회화’(카게에)를 창시하고 ‘동양의 디즈니’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빛’과 ‘그림자’로 만든 신비한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오는 4월 7일까지 진행되는 ‘오사카 파노라마’ 전에서는 6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비롯해 200여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백수(百壽)를 맞은 후지시로 작가가 전시를 앞두고 열흘에 걸쳐 새로 제작한 ‘선녀와 나무꾼’을 선보인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1958년에 다섯 작품을 제작하고 1973년에도 이 작품을 동화로 엮어 발행했다. 다만 일부 원화들이 작품 촬영 등을 계기로 유실됐는데,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12점을 추가로 제작했다.

후지시로가 창시한 그림자 회화는 면도칼로 오려낸 종이와 컬러필름에 빛을 투사해 빛과 그림자로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처음 이 기법을 고안한 시기는 일본이 전쟁으로 황폐화된 1940년대였다. 생활고로 그림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듯이 후지시로도 들판에 굴러다니는 골판지와 철사, 전구 등을 활용했다. 여기에 게이오대 경제학부 재학 시절 접한 인형극과 일본 전통 그림자 연극의 요소를 가미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1950년대부터 그는 신문과 인기 잡지 등에 작품들을 연재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순회 전시 개최, 그림자극의 상연 횟수만도 2000회가 넘는다. 그의 작품은 1970년 오사카 만국 박람회 포스터에 실렸고, 인형극은 역사 깊은 공연장인 부도칸(武道館)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훗날 일본의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그림자극으로 상연한 작품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인한 특별 선정작이 됐다. 이후로도 그의 작품은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작풍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창기 액자크기로 제작한 모노크롬 작품부터 화려한 색감의 대형작품까지 점차 확대되는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중 ‘도깨비의 여행’이 눈여겨볼 만하다. ‘도깨비의 여행’은 일본에 살던 도깨비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배에 실려서 노트르담에 도착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도깨비는 간장병을 옆에 달고 곳곳을 감탄하며 돌아다니는데 인간들의 오해를 받고 쫓기다 결국 죽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종 및 성소수자 차별 등 다소 무거운 주제가 연상되면서도 콩트를 보는 듯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종교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장면을 그만의 시각으로 연출했다. 대표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주제로 선택하는 ‘홍해를 건너는 모세의 기적’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을 패러디한 ‘최후의 만찬’ 등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선보인다.

또 이번 전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이다. 겐지의 동화가 극으로도 그림으로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시절, 후지시로는 그의 동생이자 겐지 연구가인 미야자와 세이로쿠의 허락을 받아 카게에 극을 상연했다. 전시에서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부도리 전기’ 등이 소개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금각사’를 비롯해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1관에서 2관으로 이동하는 공간에는 후지시로가 제작한 그림자 회화극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 영상과 함께 작품 제작 시 활용한 인형을 전시해 몰입감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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