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랜75’, ‘국가가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스토리
영화 ‘플랜75’, ‘국가가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스토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3.04 13:32
  • 호수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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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경, 가까운 미래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위험성’ 경고

2022년 칸영화제 특별언급상 수상… 노인 빈곤·혐오 등 문제제기

이번 작품은 가까운 미래 일본에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 소재로 노인 빈곤과 혐오 문제 등을 비판해 주목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가까운 미래 일본에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 소재로 노인 빈곤과 혐오 문제 등을 비판해 주목받고 있다.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2월 10일 AP통신을 통해 드리스 판 아흐트(93) 전 네덜란드 총리가 부인 외제니 여사와 함께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실제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고 알려졌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벨기에‧룩셈부르크‧스위스‧콜롬비아‧캐나다 등도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오리건‧워싱턴‧몬태나‧버몬트‧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 합법화됐다. 만약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에서 안락사를 권유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2월 7일 개봉한 일본영화 ‘플랜75’는 국가가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뤄 주목받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2022년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황금카메라상-특별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한 장총을 든 청년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인 대상 혐오 범죄가 늘어나자 일본 정부는 75세가 되면 국가에서 죽음을 도와주는 제도, 일명 ‘플랜75’를 도입한다. 

죽음을 서약하면 10만엔(약 1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하며, 안락사를 시켜주고 화장장도 무료 제공한다. 세입자라면 집 열쇠 반환까지 맡아준다. 태어나는 건 타의에 의해 결정됐지만 자신의 죽음은 스스로 계획해 결정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는 홍보와 함께 말이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행 3년 간 1조 경제 효과 발생’을 운운하며 ‘플랜65’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도 발표한다.

호텔에서 객실 청소부로 일하며 홀로 생활하던 78세 ‘미치’는 강제 퇴직을 당한 후 생활고에 직면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며 노후를 보내던 그녀는 당장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그녀가 구직을 위해 찾는 공공기관에서는 ‘플랜75’ 광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심사도, 건강검진도, 의사나 가족 동의가 없어도 된다는 문구와 함께 마치 75세가 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 것처럼 말이다. 

같은 시각 플랜75 상담업무를 맡는 ‘히로무’에게 한 노인이 찾아온다. 빈곤한 노인들이 오가는 동네 공원에서 이동상담소를 열고 무료급식을 얻으러 온 이들에게 플랜75를 권하던 히로무는 이 노인이 2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규정상 일가친척을 플랜75 프로그램 관련 상담을 할 수 없기에 다른 동료에게 넘긴다. 하지만 이후 삼촌의 거처를 방문한 후 플랜75라는 제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다.

한편 ‘미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보호자 신청을 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결국 그녀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플랜75를 신청한다. 신청자에게는 준비금과 함께 예정된 날짜 전까지 상담원과의 대화를 연결해 준다. 미치의 전담 상담원으로 배정된 것은 ‘요코’다. 그녀는 친절하게 미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신청자가 안락사를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상담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마리아’는 어린 딸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사회복지사보다 보수가 더 좋은 정부기관의 일자리를 얻는다. 그녀의 일자리는 플랜75로 조력사한 노인들의 시신을 처리하고 유류품을 수거하는 것이다. 타국에서 알지 못하는 노인들의 죽음을 지켜보던 마리아는 의문을 느낀다. 

히로무는 삼촌과 교류하면서 플랜75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삼촌과 미치는 같은 날 죽음을 맞이할 예정이다. 미치는 전날 밤 내내 자신이 기거하던 집에서 마지막 정리정돈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예정된 시간이 서서히 다가온다.

2025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연금, 노인일자리 등을 통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하철 적자 원인을 노인들의 무임승차로 돌리고, 일부 노인의 일탈을 전체 노인의 문제로 일반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품은 ‘국가가 안락사를 권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통해 노인들의 주거, 일자리 문제, 사회에 만연한 노인 혐오를 들여다본다. 플랜75에 참여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빈곤에 시달린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친절’하게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성에 대해 영화는 담담한 목소리로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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