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7] 그날 이후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7] 그날 이후
  • 중앙치매센터
  • 승인 2024.03.11 10:33
  • 호수 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수상 김영자] 지난 2013년 4월, 텔레비전 뉴스에서 벚꽃이 활짝 피었다고 떠들어대던 그 어느 날이었다. 저녁상 차리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무엇을 꺼내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나이 드니 건망증이 생겼나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후로도 그런 사례가 몇 차례 반복됐다. 

세상에나 별일이 다 있네. 기억력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고 자부하는데 조금 전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니…. 

며칠 후 일산에서 사는 딸이 집으로 왔기에 ‘냉장고 사건’을 무심코 털어놓았다. 딸이 그랬다.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아보자’고. 뭐 이런 거로 돈 들여 검사 받느냐고 핀잔을 놨는데 딸이 강권하다시피 해서 서울 강남의 대형 종합병원에 갔다. 결과는 ‘치매’라고 했다. 

내가 치매라니? 젊은 시절 이웃집 할머니가 노망한 걸 보고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늙어가도 치매에 안 걸려야 한다고. 그랬는데 내가 치매에 걸렸다고? 아니야. 이건 분명 오진이야! 

처음 봤을 때 사위 삼고 싶을 정도로 미남이었던 젊은 의사가 갑자기 추남으로 보였다. 믿어지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고집을 부려 다른 병원에 갔다. 그 병원에선 “어르신, 인지능력이 조금 저하됐네요”라고 했다. 

‘치매’라고 진단한 의사가 미워져

인지능력 저하? 되게 어려운 말이라 얼른 말귀를 알아먹을 수 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는데 현재 치매는 아니지만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치매로 발전될 수 있으니 약을 먹고 인지 향상 프로그램에 다니면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병원을 다녀온 후, 마음이 착잡했다. 치매든, 치매 전 단계든 내 몸의 변화를 인정하고 싶은 맘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렇지만 딸이 계속해서 꼬드기는 통에 2019년 5월 말, 안양시 만안구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해 나가게 됐다. 

처음엔 며칠 나가다가 그만둘 요량으로 응했는데 웬걸, 날 맞이하는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친절하고 “어머님, 어머님” 하며 살갑게 대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아 허리가 안 좋았지만 계속 나가게 됐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치매안심센터에 도착하면 예쁜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먼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가벼운 운동으로 그날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인지능력을 향상한다는 수업이 진행된다.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나는 종이접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수업이 못마땅했다. 내가 유치원생도 아닌데 종이접기라니…. 저 젊은 여시처럼 생긴 예쁜 처녀 선생이 날 아주 치매 노인으로 간주하는구나 하는 반발심도 들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하다 보니 재미도 생기고 어느덧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색칠하기, 액자 만들기, 필통 만들기 등 몸에 큰 부담이 안 가면서도 손을 놀리고 머리를 쓰는 수업이었다. 그래서 어느덧 이런 프로그램이 치매를 예방하고 그 진행 속도를 늦춘다면, 아니 치매에 걸렸다 해도 그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면 열심히 참여해야겠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치매라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치매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면 되니까. 성당 미사에서 신부님이 이런 강론을 했다.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아야 갈 수 있다고. 그 말이 크게 위안이자 희망이 됐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 말도 떠오른다. 나이가 들면 아기가 된다고. 그 말이 틀리지 않다면 나는 지금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순박하니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나는 아이처럼 맑은 심성으로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설령 치매에 걸렸다 해도 비관할 일은 아니다.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나간 이후로는 남편을 향한 미운 생각도 사라지는 것 같다. 영감하고 20대 때 결혼한 이후 50년 넘게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영감은 내게 음식 맛이 짜다, 맛이 통 없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날 이때까지 자기 손으로 밥상 한번 안 차려 먹고 설거지 한번 안 한 주제에 음식 투정이라니! 미운 생각이 들어 톡 쏘아댔다. 그랬더니 할망구 되더니 성격이 변했다나. 그러든 말든 난 더 이상 영감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고 치매안심센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난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 자기가 왕인 양 행세하려는 영감이 미울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을 받기 이전보다는 미운 감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영감은 나보다 나이가 5살 위(84세)인지라 같이 치매안심센터에 나갈 것을 권했다. 그래서 치매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치매안심센터 가길 잘한 것 같아

딸은 날 보고 “엄마가 요즘 감상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 받기 전에는 걸핏하면 매사 화내기 일쑤였는데 그게 줄어드니 오히려 감상적인 게 더 좋다”는 것이다. 글쎄, 내가 자식들 말대로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면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게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과의 이별을 생각하면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마음 넉넉히 모든 걸 바라보려고 애를 쓴다. 죽음을 우리말로 높여 ‘돌아가신다’라고 한다. 그 말은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죽는 게 무섭지 않다.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곧 부활이라고 믿는다. 

아무튼 노년에 내가 치매안심센터에 나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대단히 잘한 선택이라 믿는다. 열심히 공부해 이런저런 상도 탔다. 특히 회원들과 같이 안양아트센터에서 핸드벨 공연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그렇다. 치매안심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이 좋은 점은 인지력 향상 같은 효과에 앞서 늙어가는 인생에 혼자가 아님을, 주변에 누군가가 함께해준다는 사실이 나는 더욱 좋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