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병원 쇼핑”
[백세시대 / 세상읽기] “병원 쇼핑”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4.03.25 10:01
  • 호수 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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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명의’(名醫)는 달래 명의가 아니다. ‘비(非)명의’로 인해 몸 고생, 마음 고생한 지인의 이야기이다. 67세 여성인 지인은 급성 담낭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발병에서 수술 직전까지 있었던 일을 들어보면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치유의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지인은 어느 날 오후부터 배가 아프고, 숨이 차고, 음식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명치가 아프고, 늑골 부위도 아팠다. 증상이 나타난 첫날 찾아간 동네의원에선 ‘소화불량’이라며 위장운동촉진제(모사프톤정), 소화제(판크론정), 제산제(알마겔에프현탁액) 등을 처방했다.

충실히 시간 지켜 약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밤새 끙끙 앓고 난 다음날 서울 종로에 있는 유서 깊은 ○○병원을 찾았다. 여의사에게 “타 의원에서 약 처방을 받아먹었지만 여전히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자 위내 통증 및 궤양현상을 방지하는 제산제(알디린정), 위장운동 활성화(가모시드정), 위산과다증약(톡사틴서방캡슐) 등을 처방했다.

역시 효과가 없었다. 아무래도 CT를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의원에 들러 의뢰서를 받아들고 근처에 있는 00영상의학과의원을 찾아가 CT를 찍었다. CT 사진을 보니 담낭이 부어 있었고, 그 안에 허연 담석이 있었다. 의사가 “급성이니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지인은 “하필 이런(의료대란)때라니…의사를 만날 수나 있을까” 걱정하며 신촌의 Y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접수창구에서 ‘예약환자만 받으니 동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고 맥이 탁 풀렸다. 

지인은 독립문역 근처 S병원이 떠올랐다. 병원에 전화해 상태를 말하자 “대기하면 의사를 볼 수 있으니 빨리 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점심시간과 겹쳐 진찰실 앞에서 30여분을 기다린 후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가지고 간 CT 사진을 보더니 “담낭이 부어 있어 항생제 등으로 염증을 가라앉힌 후 담낭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며 “최소 2주일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 의사는 모니터에 CT 사진을 띄우고 간과 담낭의 위치와 역할 등을 10여분 동안 자세히 설명해줬다. 지인은 “이렇게 친절한 의사가 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찰실을 나와 간호사를 기다리던 중 최근 담낭제거수술을 받았다는 친지의  말이 떠올라 전화를 했다. 친지는 “은평성모병원에서 수술했는데 거기가 담낭 수술 전문이라 아주 잘 해, 당장 그리로 가라”고 했다. 성모병원에 전화하자   “오후 3시까지 와서 접수를 하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 2시 30분이었다. 30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간호사에게 적당히 둘러대고 은평성모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췌담과에 접수하고 진찰실을 찾아갔다. 대여섯 명의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지인이 마지막 순번이었다. 한 시간여 후 의사와 대면했다. 40대 초반의 의사는 큰 낭패를 당한 듯한 표정으로 “입원한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여기선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 입원 준비를 한 다음 응급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날 저녁 7시 경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조용했다. 노인 등 남녀 10여명이 보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상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가리키는 빈 병상에 눕자마자 간호사가 귀에 체온기를 들이대고, 왼팔에서 피를 뽑고, 오른팔에 커다란 비닐주머니의 링거 바늘을 꽂았다. 간호사에게 “무슨 약이냐”고 묻자 “소금물”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두 시간 쯤 지나 40대 쯤 돼 보이는 의사가 찾아와 “피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높지 않으니 일단 귀가 후 다음 주 화요일 외래로 들어와 수술을 결정하자”고 했다. 

지인은 지난 10여 일 간 겪은 일을 되돌아보며 동네의원에 대한 실망과 원망, 분노에 휩싸였다. 일반인도 증상만 들으면 단순한 소화불량이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전문가라는 그들은 왜 몰랐을까. 특히 마지막에 들른 종로의 내과마저 초음파 검사조차 할 생각을 안 한 채 똑같은 처방을 내린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CT 촬영도 의사가 아닌 환자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지인은 이런 말도 했다. “방송과 언론이 연일 ‘의료대란’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실제로 병원 응급실은 한산할 정도로 조용했다”며 “2시간 동안 119구급대원이 세 차례 들어왔고 그들이 데리고 온 환자에 대한 치료도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지인의 ‘병원 순례’를 듣다가 명의를 찾아다니는 ‘병원 쇼핑’도 ‘의료대란’의 원인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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