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새 연재 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5
서문로 새 연재 소설 노수별곡 (老手別曲)5
  • 관리자
  • 승인 2010.02.05 13:55
  • 호수 2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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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 (5)

그날 이후로 황씨의 일상은 ‘꿈결같은 나날’이었다. 부지런한 아잉은 늘 집을 쓸고 닦고 하면서 집안을 번쩍번쩍하게 만들었다. 황씨는 아잉이 집안일에 열성을 기울이지 않기를 바랬지만, 아잉은 배시시 웃으며 황씨의 만류하는 손길을 뿌리치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여가 지나자 이제 마을은 물론 읍내까지 황씨의 결혼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황씨는 개의치 않았다.

아잉의 참한 성격이며 나무랄 데 없는 몸가짐까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다녔다. 황씨의 친구들은 반은 배가 아픈 심정으로, 반은 기가 차다는 심정으로 황씨를 약올리곤 했다.

“야, 이 황가 놈아.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있나? 어디 나이 환갑이 훌쩍 넘은 늙다리가 나이 서른짜리 처녀한테 새장가를 들어? 에이, 양심도 없는 놈.”

“아니, 팔팔한 서른 살 처녀한테 자네가 가당키나 해? 괜히 아까운 처자 생과부 만들지나 말어. 무리하다간 젊은 처자 배 위에서 황천길 가는 수 있어.”

다른 때 같으면 황씨는 대번 역정을 내며 쌈을 붙였을 것이나, 자신의 행동에 따라 아잉이 마을에서 받는 대우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역정을 낼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눙치며 능글능글하게 굴었다.

“이런 박가놈 하곤…. 너 같은 놈이야 이미 애저녁에 쭈그렁탱이 네 마누라한테도 퇴짜맞고 눈칫밥 얻어먹고 사는지 모르겠다만, 이 몸은 다르다 이 말이여. 내가 이래봬도 아직도 남자 능력은 소도 때려잡을 만큼의 젊을 적 힘을 고대로 간직하고 있단 말이지. 어디 못 들었는가? 밤마다 우리 집 기둥뿌리 흔들리는 소리를.”
“개갈 안나는 소리 허덜 말고, 술이나 쳐. 어디 자네가 아들이라도 하나 덜컥 낳는다면 내 믿어주지.”

겉으론 호기롭게 큰 소리를 쳤지만, 사실 황씨는 속으로 은근히 고민스러웠다. 그 전까지 잘 써먹던 황씨의 남성이 왜 하필이면 아잉을 만나는 날부터 무용지물이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긴장한 탓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초조감만 더해갈 뿐이었다. 남몰래 누에그라니, 요상한 단련기니 하는 것도 구입해 봤다. 그러나 별 소득도 없이 돈만 축났고, 오히려 그 요상한 기구를 어디다 감춰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역정이 나 몰래 뒷산으로 가 힘껏 던져버리기도 했다.

이 망할 놈의 방문판매업자들의 달콤한 꾐에 빠져 축난 돈이 대체 얼마던가.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참으로 가려운 곳만 쏙쏙 긁어가며 제품을 떠 안겼다. 일주일 사용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전액 환불해 준다는 둥, 이것 하나면 아침 밥상이 달라질 것이라며, 무식하게 옛날처럼 힘으로 쑤시는 게 아니라 현대의 부부생활은 감미로운 ‘교감’이 중요한 법이라며 권했다. 그러나 입의 혀처럼 말랑말랑한 그들의 말들과는 달리 여러 기구들은 마감처리도 제대로 안된 거친 것들이었다. 결국 한 두 번 사용하고 나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못했다.

그냥 돈만 축났다면 크게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느 날인가 꼭 열흘 굶은 탈북자 같이 생긴 놈이 집 안으로 쑥 들어 와 강권했던 ‘울트라 초강력 귀두마찰팬티’는 황씨에게 심각한 후유증도 안겨주고 말았다.

흔히 노년의 발기력 저하는 감각이 둔해져서 그렇다는 놈의 설명은 황씨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른 기구와 달리 팬티라니, 쓸만해 보였다. 그저 입고만 있으면 마찰에 의해 감각이 되살아나고, 남성능력이 살아난다는데 혹해서 갈아입을 것까지 고려해 세벌에 1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구입할 때는 저녁 어스름이어서 눈이 침침해 잘 보이지 않던 팬티는 입어보니 안감이 흡사 때수건같은 꺼글꺼끌한 재질로 돼 있었다. 그래도 남성능력만 되살아난다면야, 하며 몇 날을 참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녔으니, 그놈의 팬티 때문에 그만 남성 중에서도 가장 감각이 예민한 부위가 헐어 진물까지 질질 흘리는 형편이 됐던 것이다. 황씨는 이후 몇 날을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면서 비뇨기과를 다녀야만 했다.

“아니 영감님, 대체 이게 어쩌다 이렇게 된 거에요? 좀 일찍 오셨어야지요. 쯧쯧…. 이렇게 짓무를 때까지 계시면 어떡합니까?”

“그게, 거시기허게 됐어”

어렵게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는 박장대소를 했고, 말을 내지 않겠다고 신신당부까지 받았지만, 어디 말이란 게 새처럼 가둬 놓을 수 있는 있는 것이던가?

어느덧 바람처럼 빠져나간 말은 온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망신살도…. 망신살도….’

몸져누운 황씨는 화딱지가 나 견딜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당당해져야 혀. 나가 뭔 죄졌당가?’

마음을 고쳐먹고 나자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이 그랬다. 그놈의 체면이 무엇이건대. 사람이 행복하자고 도덕도 생겨난 것이고, 체면도 생겨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 왜 도덕이나 체면 때문에 불행해져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일도 없지 않은가?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다시 자신감이 불끈 솟았다. 마을에 떠들썩하게 소문이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잉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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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회 2010-02-18 14:47:19
오랜만에 들러 소설을 읽었수다. 재밌더군.

강창식 2010-02-13 21:07:35
다음호 빨리 올려주시오. 그리고 3회는 빠졌소? 즐거이 읽고 있으니 작가양반도 힘내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