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칼럼] 결혼식의 불건전한 특성 타파하자
[금요 칼럼] 결혼식의 불건전한 특성 타파하자
  • 관리자
  • 승인 2010.02.20 13:47
  • 호수 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호화 결혼식과 축의금이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가 한 가정을 꾸민다는 것을 공표하고, 이것을 가족과 친지로부터 축하를 받는 행사이다. 그런데 이 결혼식이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행사로 전락하였다. 몇 명의 하객이 왔다느니, 몇 천 만원의 축의금이 들어 왔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보다 우선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나 또한 부담되는 액수의 축의금을 들고 길게 늘어선 하객들에 끼어 눈도장을 수없이 찍어 왔으니 할 말이 없다. 호화혼수가 오갔다는 소문, 유명 인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도열해 있는 화환들, 1인당 7만~8만 원 이상은 족히 돼 보이는 음식,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의 신부 드레스… 거기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분의 주례사는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그런 본말전도의 현상에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이다.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이런 결혼식을 흉내 낼 수 없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열등의식에 빠져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이젠 청첩장을 받으면 고지서가 또 왔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초대받은 결혼식에 안 갈 수 없고, 남이 내는 만큼의 축의금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어느 토요일은 서너 건을 처리하느라 피곤한 주말을 보내게 된다. 남의 자식 결혼식에 많은 돈을 갖다 바쳤으니 내 자식 결혼 시킬 때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아내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이런 악순환은 결국 결혼식 규모를 크게 만들고, 무리를 해서라도 대규모 호화 결혼식을 흉내 내다 보니 결혼식의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난무한다.

특히 결혼식의 분위기가 결혼 당사가가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앞날을 축하하고 같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주인공이 되어 가문의 부와 권세를 자랑하는 행사가 돼 버린 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런 결혼식은 하객의 진지함이 부족하여 시장 바닥처럼 소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최근 뜻있는 사람들이 가족 중심의 결혼식을 하거나, 구청의 문화회관 같은 곳에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결혼식과 축의금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불건전한 특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떻게 하면 결혼식이 참석한 모든 사람의 진정한 축복과 기쁨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답답하지만 저절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고쳐지기를 기다려야 하나?

필자는 우리 사회의 어르신인 노인들이 건전한 결혼식 풍조를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노인들은 삶의 경륜과 지혜가 있어서 후손들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는 주장이 이 경우에 잘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노인이 개인적으로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측면도 있으며, 노인단체가 이 일을 위해 어떤 캠페인을 벌여도 좋겠다.

첫째, 노인들은 집안의 어른으로서 검소하고 당사자 중심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도록 자녀들을 설득해야 한다. 좋은 결혼식 사례를 제시하여 결혼하려는 손자 손녀들이 본인 중심의 소박한 결혼식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되게끔 본인들이 준비하고 계획하도록 하는 것이다. 체면치레로 참석하는 사람보다 정말 자신을 축복할 사람 위주로 청첩하되 인원을 적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몇 명이 올지 모르니 무조건 청첩장을 많이 뿌리고 보는 무례함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서양에서는 결혼식에 R.S.V.P.(초대에 응하는 회답을 주십시오)가 관행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노인들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문제에서 손자녀의 의논상대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과도한 축의금을 대체할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한다. 준비한 축의금 일부를 축하받을 사람의 이름으로 공익단체나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영수증을 전달한다거나 아름다운 시나 그림이 있는 카드에 진정 축복된 글을 적어줌으로 당사자들이 오래 간직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이런 것이 당장은 큰 영향이 없어 보이지만 노인 하객의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 젊은 사람들에게도 꽤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노인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이건 당장 실행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셋째, 노인 단체는 건전한 결혼식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한다. 노인 단체 회원들은 다른 사람의 호화 결혼식을 방해할 수는 없지만 본인 가정의 허례허식적인 결혼식을 주최하지도 말고 참석하지도 말자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다. 단체행동의 이점은 혼자서는 무력감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괴짜 노인으로 여기겠지만, 이것이 단체활동의 힘과 유익성이 아니겠는가? 단체의 힘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떤 단체든 먼저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노인 단체는 이제 노인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운동을 전개할 단계가 되었다.

김동배 연세대학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