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선거철, ‘노인복지’ 외치지만 쪽방촌엔 무거운 침묵만
[르포]선거철, ‘노인복지’ 외치지만 쪽방촌엔 무거운 침묵만
  • 안종호
  • 승인 2010.05.28 13:31
  • 호수 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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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끼 무료급식 의존…“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 “화장실, 세면장도 없는 쪽방보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가슴 속에서 외로움 지워야 살 수 있는 곳이 쪽방촌”

 

 

5월 25일 정오 무렵. 쪽방촌 일대가 술렁거렸다. ‘쪽방상담소(02-2068-4353)’를 운영하는 ‘광야교회(임명희 목사)’의 무료배식 시간이었다. 주민 외에도 서울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명의 어르신들과 노숙자들이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한다.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서 만난 김길현(61)씨는 쪽방생활을 감옥살이에 비유한다.

그는 “창문도 없고, 환기도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뭘 하겠어. 때 되면 배식 받아먹고, 들어가서 TV보는 게 일상의 전부”라며 "화장실, 세면장, 취사장도 없는 쪽방보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황금자(가명·여·72) 어르신에게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으로 받는 38만7000원은 한 달 생활비다. 매달 집세 20만원을 뚝 떼어내고, 쌀과 라면, 반찬 몇 가지에 약을 사고 나면 고작 5만여원이 남는다.

이런저런 생활비를 대면 매달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냉장고라도 고장나면 정말 낭패다. 네 달을 아끼고 아껴야 15만원짜리 중고냉장고 하나를 겨우 살 수 있다. “여기 사람들은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버티는 것”이라는 황 어르신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정만순(81) 어르신은 쪽방촌에서 45년을 생활한 ‘베테랑’이다. 그는 당뇨병을 비롯해 불면증, 우울증, 치매, 안질환 등 하루 7~8종의 약을 먹어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아내를 잃고, 3명의 자녀들도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설상가상, 건설현장에서 사고로 목과 왼쪽다리를 크게 다쳐 5년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그 후 빈 털털이로 쪽방촌에 들어와 생활한 지 벌써 반세기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국가는 ‘참전수당’이란 명목으로 한 달 고작 9만원을 쥐어줄 뿐이다.

또 목과 다리의 장애로 한 달 3만원의 장애(4급)수당이 지급된다. 하지만 치매, 우울증, 불면증과 같은 정신과 진료를 받아도 1년 동안 꾸준히 약을 복용한 기록이 없으면 장애등급을 낮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때마다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정 어르신은 장애수당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성치 않은 고령의 노구를 이끌고 행정체계를 따르다보면 각박한 세상이 한 없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40대에 쪽방촌에 들어와 일생의 절반을 보냈다는 임중구(66)씨는 낯선 손님들이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2평 남짓한 그의 방, 아니 집에는 단출한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TV 탓에 좁은 공간이 더욱 안타깝게 보였다.

“여기서는 과거나 가족 얘기는 묻지 않는 게 원칙이야.”

30여분이나 이어진 경계심을 풀고 임씨가 꺼낸 말이었다. 젊은 시절 원유사업으로 큰돈을 만졌지만 자녀 유학비와 갑작스럽게 찾아온 간경화와 심장병에 전 재산을 소진했다. 아내마저 떠나고 말았다.

깊은 슬픔에 노숙으로 연명하다 쪽방촌을 선택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자식들마저 전화조차 받지 않고 자신을 외면한다며 애써 참던 눈물을 훔치는 임씨. 아들은 대기업에 다니고, 딸은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사는 집조차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기초노령연금과 장애수당 등 한 달 45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생활고는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다. “손주들 얼굴 한번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는 그에게는 가슴 사무치도록 그리운 가족들의 차디찬 외면이 가장 고통스럽다. “그래도, 자식들한테 피해 안주고 조용히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정기(81) 어르신도 쪽방촌에서 20년을 살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향 황해도 연백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아버지와 함께 남하했다. 하지만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고, 지금까지 홀로 지내고 있다.

“60년도 더 됐으니 가족들은 얼굴도 기억이 안나. 여기서는 외롭다는 말 자체를 잊어야 살 수 있어.” 사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몸져누워도 물 한잔 떠 줄 사람이 없다. 가끔 이대로 죽어도 아무도 모를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벌써 10년 넘게 ‘소년의 집’과 충북 음성 꽃동네, 성가병원에 남몰래 매달 2만원씩 총 6만원이란 거금을 기부하고 있다. 약 40만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의 15%에 해당하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자신의 외로움을 기부로 달래고 있으니, 쪽방촌에 절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손자와 함께 쪽방촌에 사는 이모(여·67)씨는 막막한 생계에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쪽방상담소를 찾았다.

“7년 전쯤 아들이 어린 자식을 맡기고 집을 나가버렸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연락도 없고…. 그런데 아들이 있다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안된데….”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일. 말끝을 흐리는 어르신은 말 그대로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근로에 참여해 20만원을 벌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모은 폐지를 되팔아 대략 15만원을 받는다. 한 달 35만원으로 손자를 양육하며 살아가야 하는 생활이 어떨지 상상조차 힘들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상담소에 따르면 이곳은 서울지역 쪽방촌 가운데 거주자가 가장 많다. 현재 97개동 520여개 쪽방에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 80%가 10년 이상 장기 거주한 고령자다. 주민의 65%에 달하는 38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하지만 ‘쪽방’ 자체가 불법이다. 대부분 건축물관리대장에 등재되지 않은 무허가건물인 셈이다. 무엇보다 낙후된 목조건물에 환기구도 없는 비좁은 단칸방이 문제다. 미로처럼 붙어있는 이곳에서 자칫 화재라도 발생한다면 몸이 불편한 고령의 주민들에게는 예고된 대형 참사나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까다로운 법과 규제 때문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현실적인 최저생계비 책정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최저생계비는 생계에 필요한 필수품의 가격을 더해 결정하는 전물량방식으로 계측된다”며 “하지만 해가 갈수록 최저생계비가 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에도 못 미치고, 물가상승률도 따라잡지 못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쪽방촌의 어르신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복지와 함께 ‘상식적인 수준의 인권’”이라며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지원제도의 모색이 간절하다”고 전했다.

 

▶ 쪽방이란?
욕실이나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이 없는 좁고 협소한 방의 형태를 말한다.
크기는 대략 1.6~6.6㎡(0.5~2평)로 어른 한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다. 일반적으로 일세(약 7000~8000원)나 무보증월세(15만~20만원)와 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는 3500여개의 쪽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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