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③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③
  • 관리자
  • 승인 2006.09.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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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한 식성’ 노년기 들어 식사량 줄이며 체중조절에 신경

한식·중식 등 종류 가리지 않고 맛있게 즐기는 취향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신동아’ 2000년 5월호에 아주 재미있는 글을 썼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탤런트 최민수의 남성성에 관한 기사였는데, 의외로 김 대통령이 눈물을 잘 흘리는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 박사는 “차고 넘칠 만큼 많은 그에 관한 자료는 정치인답게 정교하고 세련되게 포장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취사선택이나 해석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김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여주는 자료가 많지 않더라는 얘기다. 옳은 지적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

 

그는 대통령 이미지 보다 야당 지도자, 민주화를 위한 투쟁가, 선생님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자료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그 점을 들어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이댄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인간’은 없고 위대함만 생각나는 케이스가 되고 말았지 않았나 싶다. 측근이나 지지자들이 신앙처럼 엄숙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김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볼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중이 약하게 다뤄졌을 뿐이다.


음식 이야기를 보자. 김 대통령의 음식에 관한 일화는 이런저런 매체와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게 제법 있다.


손혁재의 정치콩트집 ‘돌아온 DJ(김 대통령의 이니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가 있던 김 대통령이 영국에서 귀국한 뒤의 상황에 대한 유머다.

 

YS(김영삼 전대통령의 이니셜)가 청와대에서 식사하자고 초대했는데 거절하는 장면이다. 아무리 초대를 해도 DJ가 가지 않자 YS가 화가 났다. “안 오는 이유가 뭐꼬?”라고 하자 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는 겨우 칼국수밖에 안 준다며. 내가 얼마나 대식가인데”라고 한다.


‘대식가’라는 표현이 왜 나왔을까. 정말로 양껏 먹는 식성이라면 이미 유머가 아니다. 아니면 유머라고 만든 작자의 함량 문제다. 물론 이것은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는 유머이기는 하다.

 

YS 대통령시절 청와대에 초대받고 가서 칼국수로 식사를 하고는 돌아가는 길에 아구찜으로 다시 식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YS의 김기수 비서실장도 필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20년전 담배 끊고 녹차·홍차 즐겨 마시며 웰빙생활

청와대 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허갑범 박사는 “식사를 잘 하시는 편이었습니다”라고 했다. 된장, 김치찌개, 해물 등 전통 한식은 물론이고 중국음식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식성이라는 것.

 

옥중서한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잡곡밥을 좋아해서 집에서 주는 쌀밥을 가지고 이웃집 아이의 조밥과 바꿔 먹으러 다녔다”는 대목도 있다. 한마디로 식도락가라기 보다는 왕성한 식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다만 고향의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는 홍어를 즐겨서 서울의 어느 홍어전문 식당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자주 찾은 홍어’라는 식으로 알려진 적은 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 나중에는 식사량을 줄이고 체중도 줄였다고 한다. 노년세대의 건강에는 역시 소식이 대세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기호식품은 어떨까. 김 대통령의 이미지로 보면 커피를 즐길 것 같아 보인다. 학구적인 이미지로 보나 해외 생활을 한 것으로 보나 서구 취향의 이미지가 언뜻 떠오른다.

 

  청와대에서 건배하는 김 대통령 부부 

 

이에 대해 허갑범 박사는 커피보다는 녹차와 홍차를 자주 즐긴다고 한다. 김 대통령의 체질에 관한 사항이겠지만, 역시 노년세대의 건강에 좋기로는 차가 좋은 듯하다. 김 대통령 뿐 아니라 본 시리즈 역대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차를 즐겨 마시고 있었다.


담배는 끊은 지 20여년이 넘는다. 미국에 망명해 있던 시기에 미국 사회의 흡연자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심한 것을 보고 끊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하루에 3갑 정도씩 피우던 애연가였고, 파이프 담배를 즐기기도 했다.

 

물론 담배를 물고 고뇌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60세 정도에 금연을 했다 해도 그 세월이 20여년이 넘었으니 이미 오래 전에 담배와는 동떨어진 인물이 되었던 셈이다.

 

의사들의 의학적 소견이나 사회적인 인식이 그러하듯이 역시 장수하기 위해서는 담배를 멀리해야 할 것 같다.


인간적인 정과 웃음도 풍부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 측은 언론, 특히 텔레비전에 그런 모습을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해에 우리 사회의 유행 코드가 그러했는지 모르지만 김 대통령의 인간미, 유머러스한 면을 공중파 방송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중 코미디언 이경규가 일산 자택을 찾아가 만난 것은 압권.

 

김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는 일상의 가벼운 조크를 보여줌으로써 보통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부부간에 센스 있고 정감 있게 오가는 조크와 이웃집의 정 많은 아저씨와 같은 웃음 짓는 표정은 그 동안의 강인한 혁명가, 한 많은 정치가, 노욕 등의 이미지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순간, 일산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자택에 몰려든 수많은 보도진 속에 코미디언 이경규의 모습이 보인 것도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故 문익환 목사 장례식장서 눈물… 감성의 카리스마

 

그런가 하면 눈물도 풍부했다.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꼬장꼬장해 보이는 김 대통령이 의외로 지지자들이나 언론에 우는 모습을 보인 때가 있었다.

 

모진 정치적 탄압이나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감을 이겨낼 때 안으로 삭인 감정도 많았을 터이지만, 때로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울음으로 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았다.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샘이라는 감성도 풍부했기 때문에 김 대통령이 장수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눈물은 인간에게만 있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장치다.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됐다가 강제로 동교동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기자들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처난 뺨, 초췌한 얼굴로 우는 모습은 지금도 기록사진으로 남아 있다.

 

정혜신 박사는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1994년 문익환 목사 장례식장에서 우는 김 대통령의 눈물을 포착한다. “필자의 눈을 끈 것은 바로 그 우는 모습이었다. 늘 취재진과 카메라가 뒤따르는 사람이었음에도 남의 눈이나 체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적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안도의 한숨울 내쉬며 눈물을 비쳤던 일화에 대해서도 정혜신 박사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한마디로 그 울음이 아름답더라는 것.


정 박사가 간파하고 진단한 바와 같이 겉치레적인 남자다움에 비하면 김 대통령의 그러한 울음, 즉 유연함은 놀랍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이전까지 필자에게 ‘김 총재’는 권위적이고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가였을 뿐이다.

 

그의 눈물을 본 후에 필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재미난 경험을 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가 아니라 남자로서는 흔치않은 감성의 소유자다.

 

대통령이 된 후에야 알게 된 뛰어난 유머감각도 바로 그의 진화된 감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정혜신 박사는 그러한 ‘감성적인 카리스마’가 무한의 파괴력을 가진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논리적인 정견 발표와 같은 언어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말하는 이의 얼굴표정, 눈빛,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90% 이상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성적 힘은 외부로만 발산되는 것이 아니다. 김 대통령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도 유익하게 작용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정혜신 박사가 주장하는 ‘유연성’도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건강하게 수를 누리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남자의 카리스마란 근본적으로 느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라고 정 박사는 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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