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품에 잠들었으면(4)
그대품에 잠들었으면(4)
  • 관리자
  • 승인 2010.07.23 11:06
  • 호수 2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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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로 연재소설 노수별곡(老手別曲)
여자는 흥정도 하지 않은 채 장씨와 같이 산 아래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줘야 하나?’
슬며시 걱정도 됐다. 아직 많이 늙지 않은 여자다.
“그런데….”
“아유, 아저씨. 내려가면서 얘기하자니까요?”

장씨보다 서너 걸음 앞질러 헤아리는 여자였다. 잘못하면 옴팡 바가지를 쓰게 생겼군. 지갑에 얼마가 남아 있더라? 장씨는 속으로 쓴 침을 삼켰다.

여자가 앞장서 내려갔다. 주변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듯 거침없이 내려가는 여자의 두꽁무니를 장씨는 말없이 따라 걷기만 했다.

여자가 안내한 곳은 작은 여인숙이었다.

‘아직도 서울에 여인숙이 있었던가?’

허름하긴 했지만, 그래도 방은 깨끗해 보였다.

“술을 좀 사올까요?”

밝은 불빛아래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이런 일을 할 여자같이 보이지 않는데….’

장씨는 지갑을 열었다. 5만원이 들어 있었다. 여자가 꽃값으로 얼마를 요구할 지 몰라 잠깐 난감해졌다.

“저기, 근데….”
“아유, 아저씨도 참. 남자가 그렇게 숫기가 없어 어디에 쓴대요?”
여자는 남자의 지갑을 나꿔 채 1만 원을 남기고 나머지 돈을 빼들었다.
“막걸리나 좀 사오면 되지요?”

대체 꽃값이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겠으나 술을 사고 방값을 지불하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이 남을 것이었다. 장씨는 아무 말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여자가 술을 사러 나간 후 장씨는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여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당했군.’

쓴 웃음이 나왔다. 다 늘그막에 발정난 수캐마냥 여자 뒤꽁무니를 쫒아다닌 자신이 한심했다.

얼추 술도 깨고, 어두침침한 낡은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남겨진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다. 남자란 젊으나 늙으나 그저 여자가 필요한 법이다. 열 효자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는 말은 이런 외로움을 반영한 것이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취기도 가시고 체력도 회복됐다. 조금만 더 쉬고 일어나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아유, 요 앞 식당에서 열무김치 좀 얻어온다는 게 좀 늦었네. 아저씨, 늦었다고 화 안나셨죠?”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서는 여자의 손에는 막걸리 네 병과 김치 보시기가 들려 있었다.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가?’

장씨는 알 수가 없었다.

여자는 장씨와 마주 앉아 권커니 자커니 술을 마셨다. 장씨도 여자를 품에 안을 생각은 멀리 달아나고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가 더 좋았다. 흡사 아까 이여사가 가고 이 여자가 장씨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하늘이 보내준 것만 같았다.

“그런데, 돈을 얼마나 드려야 되우? 난 아까 지갑 봐서 알겠지만, 그게 다인데.”

여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아저씨, 딱 봐도 돈 없게 생겼드만 뭐.”
“그런데, 왜?”
“아저씨가 날 고른 게 아니고, 내가 아저씨 찍은 건데요? 아저씨랑 놀고 싶어서.”
“….”

장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직업여성이 아니란 말요?”
“글세…. 직업여성이란게 뭐 자격증이 있는 건가요? 어떤 아저씨들은 같이 놀아주면 십만원도 주고 그럽디다. 하지만, 난 내가 싫으면 돈 많이 줘도 같이 안 놀아요. 반대로 내가 좋으면 돈 상관없이 놀기도 하고.”

이런 게 21세기 신여성인가?
여자는 때때로 산을 찾는 남자들과 함께 놀고 돈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아직까지는 자신의 외모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므로 삶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 궁핍하지도 않은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산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소?”
“내가 사는 게 어떤데요?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 사람하고 노는 건데 그게 뭐가 어때요?”
“그래도, 여인네가….”
“그 여인네들 데리고 놀고 싶어서 환장하는 건 남자들 아닌가요? 자기들이 그러면서 왜 여자들만 가지고 뭐라 해요? 잔말 말고 술이나 한잔 따라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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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권 2010-08-16 09:28:03
재밌는 글입니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가는 마력이 있군요 노인들의 일반 생태를 잘 현시한 작품입니다 누구나 한 두번 겪은 경험담이고 또한 현실입니다 문장이 매끄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으로 이런 굼집은 곳에 숨어있긴 매우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