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리더]“‘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키다리 아저씨’를 아시나요?”
[시니어리더]“‘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키다리 아저씨’를 아시나요?”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08.20 13:40
  • 호수 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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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도우미, 이인종(71) 어르신
▲ 지하철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종(71) 어르신이 8월 16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교대역에서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을 부축하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photo@100ssd.co.kr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 역사에는 70대의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밝은 미소와 단정한 의상, 친절한 말투로 고객들을 응대하는 이인종(71)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지하철도우미로 2년째 일하고 있는 이 어르신은 직원들보다 더 많은 고객들과 만나는 교대역의 얼굴이자 터줏대감이다. 특히 이 어르신의 친절하고 정확한 안내를 받은 고령의 고객들은 일부러 교대역까지 찾아와 그에게 길을 물을 정도다. 음료수나 간식 등을 챙겨 오는 사람도 있다.

그가 ‘교대역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데는 자신만의 철저한 직업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안내하고, 부정승차 인원을 잡아내는 역할을 수행하려면 외모와 말투, 복장이 우선 단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폭염이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에도 반드시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갖춰 입는다.

특히 언어는 공손하면서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거울을 보며 1달 이상 연습까지 했다고.

이 어르신은 ‘고객을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자’는 생각을 항상 되뇐다고 한다.

그는 하루 3시간, 주 3일을 근무한다. 하지만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건강관리에도 힘쓴다. 등산을 즐기고, 멀지 않은 거리는 되도록 걸어 다닌다. 3시간을 계속 서 있어도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혈압이 다소 높은 것 외에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강철체력을 자랑한다.

이 어르신이 이처럼 남다른 책임의식을 갖게 된 것은 사업 실패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운송관련 자영업을 하던 그는 IMF를 겪으면서 모든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당시 나이 58세. 대부분이 은퇴를 결심하는 나이였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허무함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직장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선택했다. 몇 년의 봉사활동을 하던 중 2008월 7월, 친구의 소개로 서울지하철도우미에 응시하게 됐다. 그리고 69세의 나이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어르신은 “고객들을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젊었을 때의 열정을 찾게 됐다”며 “도우미 역할에 남다른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된다”고 말한다.

일을 처음 시작해서 한 달 동안은 열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민들이 뭘 물어도 아는 게 없으니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다. 한번은 환승 방법을 잘못 알려줘 하루 종일 불안했던 때도 있었다고.

그래서 그는 퇴근 후 집에서 지하철노선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예상 목적지를 정해 빠른 코스를 설명하는 가상실습도 했다. 교대역부근의 주요 건물들과 버스노선 등은 직접 찾아다니면서 자세한 위치를 설명할 수 있도록 메모까지 해 놓았다.

건물이 새로 지어지거나 버스노선이 바뀌면 역무원들에게 알려줄 정도다. 이제는 지하철 노선도를 안보고도 줄줄 외운다. 서울역, 용산역 등 사람들이 자주 묻는 행선지는 갈아타는 승강장 번호까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미개통 구간의 개통시기와 역까지 꾀고 있다.

2호선 교대역 방승관 과장은 “이인종 어르신을 도우미뿐만 아니라 모든 역무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 케이스로 소개한다”며 “특히 금요일 오후와 퇴근시간 등 이용고객이 급증하는 시간대에는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나와서 일을 돕는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매일 매일이 분주한 지하철 2호선 교대역사. 71세 키다리 아저씨, 이인종 어르신은 오늘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키다리 아저씨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교대역을 찾는 시민들과 계속해서 만나는 것이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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