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백세잔치 손수 준비하고 싶어요”
“어머니 백세잔치 손수 준비하고 싶어요”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08.20 13:41
  • 호수 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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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노모(老母) 모시는 효녀, 장광순(64)씨
▲ 98세의 최홍련 어르신이 8월 17일 오후 딸 장광순(64)씨에게 손가락 맛사지를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임근재 기자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한 아파트에는 ‘그네 할머니’가 있다. 98세의 최홍련(98) 어르신이 바로 그 주인공. 백발이 성성한데다 지팡이까지 짚고 있지만 그네 탈 때 만큼은 마치 어린 소녀 같다. 그네를 타고 나면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웬만한 아가씨들도 힘들어하는 윗몸일으키기도 10번 정도는 문제없이 해낸다.

어르신에게 건강 비결을 묻자 “늘 곁에서 자신을 웃게 만들어주는 딸이 있어서”란다. ‘그네 할머니’만큼 그의 딸 장광순(64)씨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유명인사다. 이가 없는 어머니를 위해 가방에 가위와 포크를 가지고 다니는 ‘동네딸’로 통한다.

장씨가 어머니를 모시게 된 사연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3남매 중 외아들이었던 큰오빠가 간경화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지방에 있던 둘째 언니를 대신해 그가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 사실 그의 가정형편도 녹록치 않았다. 남편과 함께 버스정류장 가판점 운영과 의류도매업을 하면서 틈틈이 어머니를 돌봐야했다.

고생 끝에 두 딸을 출가시키고, 형편이 좀 나아지려던 2000년. 운명의 장난처럼 남편을 또 다시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떠나보냈다. 결국 홀어머니를 모신지 35년, 모녀가 둘이 함께 산지 10년이 된 셈이다.

이런 장씨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지난 2006년, 작은 아파트 하나를 분양받았다. 그의 나이 60되던 해였다. 장씨는 당시를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회상한다. 하지만 고생만 하다가 집장만하는 것도 못 보고 하늘나라로 먼저 간 남편 생각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작지만 내 집이 있고, 일을 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장씨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 연세가 지극하신 어머니를 집에 두고 일터로 나가는 그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장씨가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사람은 일을 할 때 빛이 난다고 늘 강조해서 말씀하셨어요. 지금의 부지런함과 근면한 생활습관은 어머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재산이에요. 무엇보다 우리 모녀를 신경써주시고 챙겨주시는 경로당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거죠(웃음)”

아파트 경로당 윤 덕 회장은 “노모를 홀로 모시면서도 늘 밝게 지내는 모습은 젊은 세대들 뿐 아니라 경로당 어른들에게도 효(孝)의 본이 된다”며 “덕분에 어르신들을 내 부모처럼 생각하며 한 번 더 신경 쓰고 돌보게 된다”고 말한다.

모녀의 기상시간은 새벽 4시 30분이다. 출근에 앞서 어머니 세안과 샴푸를 해드린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점심상도 미리 차려 놓는다. 출근시간이 빠른 만큼 퇴근시간도 빠르다. 오후 3시쯤이면 집에 온다. 집에 돌아와서 거의 모든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이발도 직접 해 드리고, 운동과 산책도 함께 한다. 최근에는 어머니의 새로운 취미생활인 화초 가꾸기를 위해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매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어머니를 위해 일요일 아침에는 목욕을 시켜드린다.

음력 7월 7일, 인터뷰 하루 전 날이 바로 최 어르신의 아흔 여덟 번째 생신이었다. 장씨는 아파트 전 동에 백설기 떡을 돌렸다. 그는 내년 말에는 어머니의 100순 잔치를 손수 준비하고 싶다고 말한다. 가족처럼 어머니를 돌봐준 경로당 식구들과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을잔치를 만들겠단다.

아파트단지 입구엔 최 어르신이 직접 씨를 뿌려 키운 감나무 두 그루가 있다. 장씨는 나무에 감이 열릴 때까지 어머니가 건강하게 지내시는 게 그의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한다.

안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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