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유엔 노인권리협약을 위해 한 목소리 내자
[금요칼럼] 유엔 노인권리협약을 위해 한 목소리 내자
  • 관리자
  • 승인 2010.08.20 13:48
  • 호수 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 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 차기회장
1948년에 제정된 유엔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인간존엄성과 권리 면에서 평등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인간 자유와 평등의 권리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노인도 동일한 개인으로서 인간존엄성을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지극히 당연한 이 권리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손상되고 노인이라고 해서 침해를 받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한 국제노년학·노인의학회(IAGG) 등 유엔 민간자문기구에서는 유엔 노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Older Persons)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에서 제정되는 권리협약은 국제법규로서 성격을 지닌다.

유엔에 가입한 개별 국가가 이를 비준하면 국내법과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개별국가가 이 협약에 따라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을 수립해 프로그램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협약이 제정될 경우 노인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노인의 권리가 침해되는 제반 문제에 대하여 예방하는 조치를 강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노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발전시켜나가도록 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엔통계에 의하면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2000년에 6억 명쯤 되었으며, 2050년에는 2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인구 고령화와 노인인구 증가현상이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양적 변화 위에 노인권리가 침해되는 질적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인에 대한 학대문제가 심각하다. 언어폭력, 성적 학대, 신체적·경제적 학대 등의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연령차별문제가 심각하다. 연령주의(ageism)라고 해서 단순히 나이 때문에 ‘노인’ 취급하며 차별하고, 노인은 무조건 병약하고 무능한 존재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는 병리현상이 심각하다.

이와 같은 연령차별과 연령주의 때문에 노인들이 직장에서 밀려나고 사회활동기회에서 배제당하는 소외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소외현상은 곧바로 노인생활상의 어려움으로 연결되고 있다. 흔히 노인4고(老人四苦)라고 하는 빈곤, 질병, 무역할, 고독의 사회문제는 나이가 든 노인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내는 연령차별과 연령주의 때문에 더 크게 양산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노인문제가 증폭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지금 유엔 노인권리협약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유엔의 인권선언 등 일반적 권리선언이나 협약에서 인간의 권리에 대하여 규정한 것은 있지만 노인을 특정하여 규정한 선언이나 협약이 없다.

2002년 유엔이 마드리드 선언으로 노인에 대한 여러 가지 행동계획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도덕적 의무를 선언하고 있을 뿐 법적 구속력이 없다.

여성, 장애인, 아동 등 다른 특수한 보호대상자에 대하여는 권리협약이 따로 제정되어 있는데 비하여 노인에 대하여는 별도의 협약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일반적 인권선언이나 권리협약에서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특수한 분야의 별도 협약이 필요한데 그 점에서는 노인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차별하는 연령차별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 필요성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유엔 주변의 노인관련 민간자문기구와 단체(NGO)들이 노인권리협약의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 노인권리협약은 세계 모든 나라로 하여금 연령차별과 연령주의를 불식하고 노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노인권리에 대한 유엔의 법적 규정은 노인들로 하여금 존엄한 삶을 살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노인권리협약의 내용에는 노인학대 방지, 정년 연장, 취업기회 보장, 의료서비스 및 장기요양서비스 보장, 지역사회복지서비스 기회 보장 등의 예방조치와 적극적 복지서비스 내용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노인의 생활 개선과 삶의 질 변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의 사회변동기를 거치고 있어서 노인문제가 선진국에 비하여 오히려 더 심각하다. 연령차별로 직장에서 일찍 밀려나온 노인도 많고, 연령주의에 따라 사회활동기회로 부터 배제되고 있는 노인도 많다. 전통적 가족보호 기능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도 대단히 많다.

그동안 잘 노출되지 않던 노인학대문제도 표면화하고 있다. 노인복지정책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노인생활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도 아직 성숙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이 매우 많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베이비붐세대의 조기퇴직이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이 노인문제가 더 크게 증폭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러므로 유엔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노인권리협약 제정 움직임에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 움직임에 대응하여 노인문제의 현황을 파악하고 권리협약 제정 시 어떠한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미리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노인 당사자의 목소리이다. 유엔 노인권리협약은 노인의 인간존엄성을 지켜주고 노인의 생활에 필요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인 노인과 노인단체의 요구와 행동이 절대 필요하다.

유엔 노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해 우리나라 노인단체가 뭉쳐 한 목소리 낼 것을 제안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