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리더]인생 2막, ‘컴맹’ 컴퓨터 강사로 거듭나다
[시니어리더]인생 2막, ‘컴맹’ 컴퓨터 강사로 거듭나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09.09 09:05
  • 호수 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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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협회 컴퓨터동아리 강사 이성기(65)씨
‘인생을 관조하며, 게임을 좋아하는 인생의 나그네.’

이성기(65·사진)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블로그(blog.naver.com/masun46)에는 미술, 음악, 철학, 영화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블로그는 개인의 견해나 주장을 인터넷 상에 일기처럼 차곡차곡 적어 올려서, 다른 사람도 보고 읽을 수 있게끔 열어 놓은 인터넷 공간이다.

최신영화부터 클래식과 팝송, 고대미술작품까지 65세 네티즌이 운영하는 블로그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일주일에 30개 이상의 글을 올린다고 하니 그 정성과 노력도 대단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보유한 문서작성 베테랑이다. 게다가 사진 및 동영상 편집에도 능하다. 이씨는 이러한 능력을 살려 한국외교협회 컴퓨터동아리 강사, 서초구 반포3동 주민자치센터와 종로노인복지관 정보화교육 보조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노인들은 컴퓨터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지요. 하지만 그 맛을 알게 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게 온라인의 매력입니다. 블로그는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많은 노인들에게 더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노인들도 조금만 배우면 쉽게 따라할 수 있거든요.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히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보화교육 강사답게 컴퓨터에 대한 예찬론을 막힘없이 쏟아낸다.
이씨는 이외에도 복지관 중입검정고시학교의 보조강사, 고혈압 당뇨를 위한 운동동아리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일들을 자원봉사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주간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있는 수첩이 그의 봉사열정을 대신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는 “봉사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던 내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줬다”며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된 남다른 사연을 소개한다.

개인비서와 기사를 둘 정도로 잘나가는 중견 건설회사 대표였던 이씨. 하지만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여파로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100억원의 빚까지 떠안았다. 회사경영권은 물론 공장 2곳과 개인소유의 집마저도 모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사장님이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 앉게 된 것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작은 토목회사에 취직하지만 불과 3년 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에게는 사업실패보다 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었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버텨오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아들의 사업실패.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씨는 퇴직 후 그간 모은 돈을 아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아들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월세방을 얻어 홀로 지내기 시작했다. 월 6만원의 5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자살에 대한 생각도 수없이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을 살았죠. 회사부도와 아내의 죽음, 아들의 사업실패까지 모두 내 탓인 것 만 같았고…. 하지만 이대로 죽는 건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얼마를 살지 모르지만 헛되게 살진 않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시작한 게 봉사활동과 컴퓨터 배우기”였다고 말한다.

컴퓨터는 과거의 아픔을 잊고 현실에 집중하려고 스스로가 부여한 ‘도전과제’인 셈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조차 낯선 그였지만 컴퓨터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자’는 새로운 인생 목표를 갖게 됐다.
이씨는 “나누고 베푸는 노년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채움을 받고 있다”며 “봉사는 무의미했던 삶에 가치를 채워주고, 무료했던 삶에 기쁨을 채워줬다”고 말한다. 또 “외로움을 달래 줄 친구들과 여자 친구도 생겼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청소년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어르신들의 동아리’를 만들고 싶단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지금처럼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 일흔이 되면, 여행을 다니며 자서전을 쓰는 것. 오늘도 그는 꿈에 한발 더 다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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