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이 변하고 있다
경로당이 변하고 있다
  • 장한형 기자
  • 승인 2010.09.09 23:13
  • 호수 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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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적 공간서 생산적 공간으로 ‘환골탈퇴’

경로당에 신선한 변혁의 물결이 일고 있다. 경로당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자리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휴경농지 경작이나 폐품수집 판매, 환경정화활동, 불법광고물 정비 등의 활동을 통해 ‘생산적 경로당’으로 탈바꿈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삼삼오오 화투놀이나 TV시청, 음주로 소일하고, 금전문제 등으로 회원끼리 갈등을 빚는 ‘소비적 경로당’은 설자리를 잃게 됐다. 최근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맞고 있는 경로당. 참신한 변화를 꾀해 사회적 모범을 보이는 ‘생산적 경로당’과 구태(舊態)의 악습(惡習)에서 헤어나지 못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비적 경로당’의 일면을 들여다봤다.

△과거엔 소비적 경로당
화투로 소일, 운영권 놓고 회원·주민과 ‘갈등’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의 A아파트경로당은 최근 회장 등 임원과 회원들이 운영비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으면서 주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A경로당의 한 회원에 따르면 이 경로당의 회장과 부회장, 감사 등 임원은 총무를 선출하라는 회원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자치구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매달 지원하는 85만원을 불투명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 회원은 “회장은 이중장부를 만들어 감독기관의 감사를 피하고 있다”며 “경로당 전용 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을 개설해 400~500만원을 적립해 놓은 것으로 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문 연 A경로당은 7월 현재 약 35명의 회원을 두고 있지만 회원 가입과 제명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사사로운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등 회장의 전횡으로 인해 경로당이 사유화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원의 주장이다.

김씨는 “여성회원의 경우 매일 약 10~15명이 이용하지만 하루 종일 점당 10원짜리 화투놀이를 하고, 남성회원들은 매일 대여섯 명이 모여 장기판만 붙들고 있다”며 “매달 한 차례씩 월례회의를 개최하지만 여타 오락프로그램이 발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경로당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과 볼썽사나운 싸움을 벌이는 곳도 있다.

경기도 양주시 B아파트경로당은 올해 초 회장 선출 과정에서 입주자대표회의와 마찰을 빚으면서 파가 나뉘어 2명의 경로당 회장이 선출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노인회 구성을 방해했다고 주장하는 김모씨는 “입주자대표회의 대표가 노인회장 선출을 위한 임시총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가 하면, 자신과 갈등을 빚고 있는 노인회를 인정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등 주민들을 선동했다”며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를 치렀고, 시청과 대한노인회에 등록절차까지 마무리했는데 입주자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다른 노인회를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입주자대표회의 대표는 “김씨는 동대표 시절 아파트 시설물에 지원된 시보조금 문제로 동대표회의를 검찰에 고발한 데다 자의적으로 동대표를 사임하고 노인회장에 취임했다”며 “동대표회의는 김씨의 사임을 인정하지 않고 검찰의 수사가 종료된 후에 결정키로 했기 때문에 노인회장 취임도 인정할 수 없다고 의결했다”고 반박했다.

△현재는 생산적 경로당
일자리 통해 운영기금 마련 ‘자립’

충북 단양군 내 경로당에서는 최근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어르신들이 생산한 배추와 콩, 사과, 호박, 국화를 이용해 가공식품을 만들거나 양봉사업을 하는 등 경로당이 ‘돈 버는 사업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단양군 가곡면 덕천리 경로당은 2008년 5월 군으로부터 2000만원을 지원받아 농한기에 된장과 메주를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을 이 마을 노인회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근 가대1리 경로당도 2007년 10월 1000만원의 사업비로 마을 산비탈에 30개의 벌통을 설치, 매년 1000만원 가량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단양군 영춘면 상2리 경로당은 2008년 12월 군으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아 하루 500kg의 율무를 가공할 수 있는 도정기계 6대와 선별기 등을 갖추고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 마을에서 생산한 연간 50여톤의 율무를 도정해 농협과 대형 상점 등에 납품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덕천리 노인회 조선형(72) 회장은 “예전에는 경로당이 화투나 장기를 두고 TV를 보는 장소였는데, 회원들이 마음을 모아 된장과 메주 등을 만들어 판매하다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경기 평택시지회와 평택시는 9월 8일 오전 청소년문화센터에서 경로당 어르신들의 경로당별 활동실적을 평가해 우수경로당을 포상, 격려하기 위해 제11회 ‘생산적 경로당 평가대회’ 개최했다.

양 기관이 지역 어르신들의 여가활동 및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개최한 이날 행사는 △휴경농지 경작 △폐품수집 판매 △환경정화활동 △불법광고물 정비 등 4개 분야에서 198개 경로당을 평가했다.

평가결과, 경작부문 6곳의 경로당을 비롯해 폐품수거부문 5개소, 환경정화 활동 부문 8곳, 불법광고물 정비부분 5곳이 우수경로당으로 선정돼 포상 받는 등 최근 전국적으로 생산적 경로당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생산적 경로당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법적 뒷받침이 절실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이 지난 1월 경로당에 대한 정부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로당지원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데 이어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이재선 의원도 지난 2월, 경로당 활성화를 골자로 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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