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한자족보 외면…한글족보 필요”
“신세대 한자족보 외면…한글족보 필요”
  • 연합
  • 승인 2010.12.10 11:04
  • 호수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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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 3세 출신 학자, 한글세대 겨냥 제작

“자기 이름도 한자로 못 쓰는 세대가 늘고 있는 만큼 한글 족보 보급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국 베이징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고서를 정리해 출판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의 편집부 주임으로 30여년간 재직, 중국 내 대표적인 한문학자로 꼽히는 정인갑(鄭仁甲·63) 칭화(淸華)대 객좌교수(중문과)가 국내외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글족보’ 보급 운동에 힘쓰고 있다.

랴오닝(遼寧)성 출신의 동포 3세인 그는 2008년 퇴임 후 한국에 들어와 인천시 송도동에 역사문화와 족보를 연구하는 황허(黃河)문화원을 설립하고 700만 재외동포와 한국인을 대상으로 족보와 가승(家乘)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보급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가승은 씨족의 가계도(家系圖)와 선조에 관한 전설과 사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인류문화의 중요한 자산인 족보가 대대손손 전승되고 연구가 되려면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청소년층도 쉽게 접근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한글 족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내 조선족 가정 대부분이 족보가 없는 것에 안타까워했는데 한국에서도 족보 문화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족보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보통 30년 주기로 새로 제작될 때 수정, 보완되는 서문이 난해한 한문이고 내용도 한문 투성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 동포들의 족보를 제작해온 그는 앞으로 러시아, 일본 등 해외에 거주하는 700만 한인 동포와 한국 가정을 대상으로 “우리 세대의 족보는 우리가 만들자”는 구호를 앞세워 족보 제작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몇 년 전 중국과학원의 이춘성(李春成) 교수가 외국에 사는 손자들에게 조상의 뿌리를 가르쳐주고 싶다며 연안(延安) 이씨의 족보를 보내와 가승 100부를 제작해 준 바 있고 최근에도 이를 의뢰해오는 한국인들의 족보와 가승을 제작 또는 번역해 주면서 가문의 뿌리 찾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1982년 만주족인 김계월(金桂月) 씨를 만난 뒤 족보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다도 소개했다. 김씨는 당시 “우리 집안 족보에 ‘사르호 김씨는 원래 조선 정주 사람(薩爾湖金氏,其先朝鮮定州人也)’이라는 구절이 있었다”며 “조상이 병자호란 때 랴오닝성 푸순(撫順)으로 끌려온 뒤 본관을 사르호로 고친 모양인데 문화혁명(1966~76년) 때 이 족보가 사라져 자손에게 우리의 뿌리도 전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금과 사당 비문 등을 써주고 받은 사례비를 털어 중국과 해외 한인 의뢰자들을 대상으로 족보와 가승을 제작해왔으나, 황허연구원 설립을 계기로 한글 족보와 쉽게 풀어쓴 가승 이야기 등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한글 족보는 서문의 중요성을 감안, 한글 번역문을 추가하고 이름 등 고유명사도 한자를 병기하고 있다.

하동 정씨 한림공파인 그는 “족보 보급이야말로 한 가문뿐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전통문화, 풍습을 지키고 전할 수 있는 효과적 운동인 만큼 이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중국 음운학연구회 이사로도 활동 중인 그는 그동안 ‘경전석문색인’, 중국 고전 산문집 주해서인 ‘고문관지(古文觀止) 역주’와 중국어발달사 등에 대한 논문 13편, ‘2000년 신한국’ 등 역서도 13권이나 출간했다.

<글·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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