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는 개인의 책임인가 국가·사회의 책임인가
사회문제는 개인의 책임인가 국가·사회의 책임인가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12.13 11:01
  • 호수 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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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수 한성대 교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1492년이었다. 원래 인도에 가려고 출발했는데 뱃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잡는 바람에 우연히 새로운 땅을 밟은 것이었다.

콜럼버스는 그가 만난 신천지를 인도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인도사람)으로 불렀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서구 중심의 가치관이요, 역사의 횡포적 판단인데 지금까지도 중남미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부르고 있다.

식민지를 개척한 그 당시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은 5대 강국이 됐고, 이들에 의해 세계는 유럽 중심의 새로운 체제로 개편됐다. 식민지에서 강탈해 온 자원과 노예는 유럽국가와 귀족사회의 삶의 질을 바꿔 놓았다.

중남미 인디언 중에 양(羊)의 털을 깎아 옷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종족이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 군대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호주로 집단 이주를 하게 된다. 호주에서 살다가 호주의 백호주의(白濠主義)에 밀려 새로이 정착한 곳은 영국이었다.

그 당시 영국은 지방 영주들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지방 영주들은 농노와 자체 군대까지 갖고 있었다. 영국에 이주한 인디언들은 영주를 찾아가 양을 키울 것을 건의했다. 대부분의 군주들은 비현실적이라며 거절했는데, 몇몇 지방 영주가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양(羊)의 털로 옷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의류혁명이 일어났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뼈를 시리게 할 정도의 추위가 순모(純毛)복지로 인해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고, 양고기 요리는 식탁을 풍요롭게 했다.

이렇게 되자 영주들이 너도 나도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양을 키우면서 군주 밑에 있는 수많은 농노들은 필요가 없게 됐다. 사실 목장에는 목동과 몇 마리의 개만 있으면 됐던 것이다.

농노들은 집에서 쫓겨나 영국의 대도시로 밀려 나게 됐다.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등 제법 큰 도시에 가서 판잣집을 짓고 살거나 다리 밑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다. 그때 전염병인 페스트, 콜레라 같은 질병이 돌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피해자는 열악한 환경, 보잘 것 없는 식사 등으로 연명하던 사람들이었다. 먹고 살 수가 없어 7~8세가 된 어린아이까지 공장에 가서 일하다가 손발이 잘라지는 안전사고가 빈번했다. 그때 나온 법이 9세 이하의 아동은 노동을 할 수 없게 하는 노동법이었다.

그 당시 영국의 왕은 엘리자베스(Elizabeth) 1세였는데 ‘열악한 환경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어찌 개인 책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1601년에 세계최초의 구빈법(the poor law)을 선포한다.

이법의 사회복지학적 발전은 ‘몸이 아픈 것이 누구 책임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답변을 공식화시킨 것이다.

양의 털을 깎아 옷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인디언들의 영국이주라는 조그마한 일이 사회복지정책의 근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는 점도 흥미로운 일이다.

사회복지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17세기 이후 유럽사회의 주된 정책기초였으나 나라마다 다른 경제적 힘, 국민의 삶의 수준이 있었기 때문에 통일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1942년 영국의 비버리지(W. Beveridge)경에 의해 발표된 ‘사회보험과 관련된 서비스’라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빈곤, 질병, 육아, 실업 등의 책임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서서히 정착된다.

그런데 정책기초인 ‘선 성장 후 분배’ 정책기조인 우리나라에서는 질병과 실업 문제의 해결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국민들의 복지의식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개인의 공동책임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문제가 개인의 책임인가, 국가·사회의 책임인가하는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국력의 수준, 자원의 보유정도, 국민의 의식수준, 복지제도의 수행능력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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