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
[서문로 作 노수별곡(老手別曲) 제3화] 달을 보고 짖는 개(1)
  • 관리자
  • 승인 2011.01.14 14:16
  • 호수 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팔은 새벽에 눈을 뜨기 무섭게 화투장부터 집었다. 어느덧 화투는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는 화투를 정성스레 섞어 마치 무슨 제의라도 치르는 양 운수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심심풀이로 하던 ‘운수떼기’는 광팔이 나이 삼십이 다 되도록 버리지 못하는 하나의 ‘제의’였다. 희한하게 화투 운수떼기는 광팔의 일진과 잘 들어맞았다. 화투장이 뒤집어 질 때마다 손끝에 미세한 긴장감이 흘렀다. 패는 깨끗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두 장 윗줄의 패 중에서 열끗으로 떨어진 것이 여섯 장 뿐이었다.

“달밤에 재물 횡재수에다가, 님이 근심에 싸여 울고 있다? 좋구나. 어디 한번 제대로 한몫 잡아보자. 쌍년, 내 이번만 한탕 잘 해치우면 보자. 네 년이 어디 얼마나 더 뻣뻣하게 구는지.” 광팔은 홍련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새벽의 냉기가 코끝에 싸했다. 지난 밤 언뜻 비 듣는 소리가 나더니 제법 많은 비가 온 듯했다. 오비끼며 합판 따위가 물을 먹어 다른 날보다 갑절은 더 힘들 것이 뻔했다.

“젠장, 우라질 놈의 비. 그래도 씨팔 오늘만 넘어가면…….”

급조된 인력 사무소 앞에 러시아인들과 동남아계 인부들이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가지고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다. 말귀 잘 알아듣고 눈치가 빠른 조선족들이야 벌써 팔려 나갔을 것이다. 이 시간까지 저 앞에서 서성거리는 걸 보니 저들은 오늘도 일을 나가긴 틀린 터였다. 광팔은 그 앞을 지나면서 잇새로 찍 침을 뱉었다. 그들만 아니었으면 지금 받는 임금의 삼십 프로는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으나 정작 자신이 받을 돈을 저들과 나누는 셈이라고 생각이 뻗치거나, 현장에서 말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버리 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험악한 얼굴로 대놓고 욕을 하곤 했었다. 그들은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한없이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묘해서, 그렇게 굽실거리면 동정심이 일어야 하는데 비굴한 모습이 눈이 시도록 거슬렸다. 욕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는 걸 어쩌지 못했다.

사실 광팔이 소위 ‘개잡부’를 벗어나 형틀 목수의 막내로 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적당히 모진 말 못하는 목수 ‘오야’ 황노인을 따라다니며 잡일을 도와가면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소주 몇 번 사가면서 비위 좀 맞춰주고 넌지시 청을 넣어 봤던 것인데, 노인네는 의외로 쉽게 이빨이 먹혔다. 성격이 꼬장꼬장한 노인네 같으면야 애시당초 이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겠지만, 이 노인네는 평생을 노가다판에서만 굴러먹었는지, 세상 일에 어수룩하고 단순한 데가 있었다.

공사 현장의 ‘잡부’에서 ‘목수’로의 변신은 그야말로 영전(榮轉)이라 할 수 있었다. 광팔은 이까짓 사층 건물 올리는 현장에서 오래 일할 마음은 없었다. 아예 노가다 판에 뛰어들 셈이었다면 어디서 착실하게 기술이라도 배웠을 터였다. 광팔이 황노인에게 알랑거리며 목수일을 배워보겠다고 청을 넣은 것은 공사판 생리에 따른 것이었다. 공사판에도 엄연히 영역과 계급이 존재했다. 벽돌을 쌓는 조적, 문짝과 내부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목수, 벽을 바르는 미장, 콘크리트를 양생하는 공구리 등 자신의 영역에서 오야와 시다가 있었다.

‘잡부’는 어느 축에도 끼지 못했고 시도 때도 없이 들고 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단 몇 달간 이뤄지는 공사에서도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라도 자신의 영역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개 나이가 지긋한 오야들은 자신의 팀을 따로 꾸려가지고 다녔다. 오야가 기술을 전수해 주고, 그 밑의 중간 기술자들이 오야를 모시면서 일을 배웠다. 광팔은 잡부로 며칠 나오면서 여러 팀들을 살펴봤고, 그 중 제일 만만하다 싶은 황노인을 찍은 것이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