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잃고 있는 대한민국…호적제도 부활시켜야
'뿌리'를 잃고 있는 대한민국…호적제도 부활시켜야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2.14 16:52
  • 호수 2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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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수 한성대 교수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소설 ‘뿌리’(The Roots)를 쓴 작가다.

알렉스 헤일리는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나 20년 정도 군대생활을 한다. 그는 미국 해안의 경비선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면서 무료한 시간에 작품을 구상한다.

그는 200년 전 7대 할아버지가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사실에 주목하고 현지답사를 했다. 드디어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조상이 서아프리카 감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쿤타킨테였고,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백인 지주에 납치돼 미국에 강제로 수송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쿤타킨테는 두어 달간의 긴 항해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목숨만 부지한다. 캄캄한 화물선의 지하에는 쥐와 이와 벼룩이 들끓었고, 배설물로 목욕을 하는가 하면 손발은 쇠사슬에 묶여 짐짝처럼 취급됐다. 조금이라도 불평불만을 하면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죽여 버리기도 했다. 죽은 시신은 갈등 없이 바다에 던져졌다.

쿤타킨테는 네 번이나 목숨을 건 탈출을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네 번째 탈출에서는 관리인에게 붙잡혀서 채찍으로 얻어맞고 오른쪽 발이 반쯤 잘리는 부상을 당한다.

그 후 쿤타킨테는 벨이라는 여성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딸은 조그마한 잘못을 저지르는 통에 다른 곳으로 팔려가고, 그곳에서 주인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후 딸은 조지라는 아들을 낳고, 평생 노예로 생활한다.

이렇게 ‘뿌리’는 미국사회에 살고 있는 흑인 노예의 후예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뿌리’는 말하자면 소설이면서도 현지조사와 고증을 거친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다. ‘뿌리’에서 알렉스 헤일리는 자기 조상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리워했던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눈물을 자아낼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족’이 나오는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가 전부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 속에 포함이 안 돼 있다.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뗄라치면 호적등본은 없어지고 가족관계부라고 해서 직계가족만 나와 있다. 한 할아버지 밑에 삼촌, 고모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의 동생, 조카도 없이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아마도 북한의 제도를 본받아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자신의 조부모를 '우리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2.4%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05년도에는 배우자의 부모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79.2%였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50.5%로 떨어졌다고 한다. 부모를 가족으로 보지 않는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말 개탄할만한 현실이다.

미국 유타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 종파인 몰몬교라는 종교가 있다. 몰몬교에서 세계 각국의 부족, 씨족의 족보를 수집해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의 족보가 체계 면이나 내용면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는 똑똑한 어린아이를 두 명을 골라 부족의 족보를 외우게 한다. 그들은 물론 문맹자 부족이다. 예를 들면 아무개의 아버지, 어머니의 할아버지, 삼촌, 아버지 등이 누구이며, 무엇을 했고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암기토록 한다. 우리나라의 보학(譜學)과 비슷한 내용이다. 그렇게 하다가 그 사람이 노인이 돼 죽으면 ‘동네의 박물관’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노인은 박물관과 같은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은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를 거쳐 온 분들이다. 서구 300~400년을 30~40년 사이에 단숨에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현대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문화를 이해 못한다. 농촌에서 쓰는 삼태기, 도리깨, 나락 등을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농경사회 박물관에 진열한 물품들은 현재의 노인들이 보기에는 친숙한 물건인데 젊은이에게는 알 수 없는 도구들로 인식된다.

여기에서 제안을 한다면 호적등본제도를 부활시켜 가족의 의미를 새로 구축하는 것은 어떨까. 또 농경사회의 도구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에 진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면 어떨까.

노인은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었으며 그분들이 살았던 역사적 사실을 교훈 삼는 사회다. 우리는 노인이 살았던 역사적 사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교훈을 삼으면서 노인을 이 나라의 박물관처럼 귀중한 존재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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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강 2011-02-18 23:52:05
우리는 부모 조부모 그리고 조상들의 은덕으로 현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을 존재하게 한 원인자이기도 한 그분들에 대한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런데 그러한 뿌리와 연결고리를 잃게 만드는 문화와 제도가 슬프고 안타깝다. 이혼과 재혼이 많은 사회가 되다 보니 그러한 신분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가족관계부가 만들어진 제도의 변천은 이해할 수 있으나, 뿌리를 알게 하는 호적제도를 병행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