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노인은 우리 사회의 ‘보물덩어리’
[금요칼럼]노인은 우리 사회의 ‘보물덩어리’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4.04 17:08
  • 호수 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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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노인전문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게 됐다. 지속가능한 고령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의 지혜와 경륜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고, 토론자들도 모두 공감해줬다.

발표와 지정토론이 모두 끝나고 청중석으로 마이크가 돌아갔다. 그날 청중들은 대부분 ‘서울시시니어전문자원봉사단’ 어르신들이었는데, 객석에 앉아 계시던 한 남성 어르신이 손을 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노인들은 보물덩어리입니다. 오랜 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발견해 낸 온갖 보물을 우리 안에 숨겨뒀죠. 그리고 이제 그 보물을 사회에 내어 줄 차례입니다.”

보물덩어리! 그렇다. ‘지혜의 보고’(寶庫)니 ‘사회의 어른’이니 노인들을 미화시키는 여러 표현들이 있지만, ‘보물덩어리’만큼 멋진 표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70년, 80년 인생으로부터 얻어진 경험과 지혜는 노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임에 틀림없다.

‘행복의 조건’을 쓴 베일런트(G. Vaillant)는 “사람의 노년은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 그만큼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누군가 그 지뢰밭을 무사히 지나왔다면,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어디 노년뿐이랴. 우리 인생 전체가 언제 어디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치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노인들은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지뢰들을 잘 피해가면서 지뢰밭을 무사히 빠져나와 노년에까지 이른 용감한 전사들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위험한 전장에서 몸소 싸우며 생존한 이들이 바로 노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무용담에 온 사회가 한 번쯤 귀 기울여 볼만 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보물덩어리 노인들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복지를 논하고, 고령화 대책을 논하고, 세대통합을 논하는 자리에 정작 노인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물론 그런 중요한 자리에 외모로는, 그리고 연령상으로는 분명 상당수의 노인들이 자리해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정부의 주요 위원회에는 한결 같이 한 자리 하셨던 그야말로 사회지도층 어르신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외모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아직 자신들도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S. Beauvoir)가 말했듯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 사회를 바꿀 힘을 갖고 있을 때는 자신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그 힘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 나가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도 노인이 됐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물덩어리 진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우선 노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모양의 그릇이 준비돼야 한다. 노년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다른 어떤 연령층보다도 노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법은 더욱더 다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노인들을 대변할 수 있는 그릇들, 노인들의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나야 한다.

두 번째는 그러한 다양한 노인들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 정책에까지 반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공식적인 통로가 없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국회나 광역, 혹은 기초단체 지역구 의원들, 즉 정치인들을 통하는 것뿐이다. 유일하게 노인들이 가진 권력이 선거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때로는 은밀히 이뤄지는 이러한 소통방식은 실제 노인들의 다양한 여론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다양한 노인단체들이 결성되면, 그런 노인단체들 간의 협의회를 통해 노인들의 다양한 의견이 여과 없이 투명하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합리적으로 담아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고령화’를 이슈로 하는 세미나나 학술대회들은 종종 광화문이나 시청 부근의 대중적인 장소에서 열리곤 한다. 그런 장소에서 하는 세미나에 주제발표나 토론을 맡게 되면 연구자들은 다른 때보다도 더욱 긴장을 하게 된다.

정해진 발표와 토론이 끝나고 청중석으로 발언기회가 돌아갈 때면 긴장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느닷없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아들고서 사회에 대한 온갖 분풀이를 발표자에게 쏟아 붓고 분을 못 이겨 고함을 지르는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화를 내고 고함을 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런 방식은 사회를 노인들의 목소리로부터 돌려 세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제 노인들도 자신의 의견을 차분히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상대방이나 다른 청중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토론문화를 배우고 익힐 때다.

보물덩어리 진짜 노인들의 목소리가 잘 다듬어져 각양각색의 그릇에 담겨져 사회에 전달될 때 비로소 발전적이고 성숙한 세대통합적인 고령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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