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시설에서 사는 노인, 얼마나 늘어날까?
[금요칼럼]시설에서 사는 노인, 얼마나 늘어날까?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5.02 10:35
  • 호수 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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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세계노년학회 차기회장

최근 우리나라에서 노인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이들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부터 32년 전인 1979년 필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학회에서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의 방향에 관해 발표하면서 한국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 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되고 사회구조도 크게 변모하고 있는 때였지만 전통적 유교문화와 가족적 유대관계의 특성 때문에 한국은 서양처럼 시설에서 사는 노인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녀와 함께 사는 형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문화는 서양문화와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서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가족중심의 노인생활이 지속될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 정부의 노인복지정책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가족이 노인을 부양하고 보호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보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의 입장이었다.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사회상황을 보면 이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근거도 있었다. 1978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노인들은 대부분(85% 정도)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노인복지시설은 46개소의 양로원뿐이었고, 여기서 생활하는 노인 수는 28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시설 입소율이 불과 0.2% 정도였다. 선진국의 5% 내지 7% 수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유대관계도 상당부분 전통적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 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하고 있다. 30여년 전에 필자가 생각하고 주장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에서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의 방향에 따라 노인에 대한 가족보호기능을 살리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인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1979년 학회에서 발표할 때 우리나라의 경우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비율은 1% 수준을 절대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2010년 현재 벌써 2%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그 당시 시설생활노인은 3000명이 채 안됐는데 지금은 10만명이 넘는다. 앞으로 노인의 시설 입소율은 선진국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 수도 30만명, 50만명하는 식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국민들의 경제생활구조가 옛날과 아주 다르게 변하고 있다. 농업생산에 기초해 공동체적으로 생활하던 경제생활구조에서 도시산업사회에서 개체적으로 생활하는 구조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와 같은 경제생활구조의 변화에 따라 가족과 친족집단의 유대관계도 크게 변모했다. 가족이 소가족화, 핵가족화하고 있다. 친족집단의 연대관계가 거의 해체되고 있다. 노인들이 공동체적 생활구조나 가족유대 속에서 생활하기가 어렵게 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변화가 형이상학적인 문화와 의식구조에도 영향을 미쳐 노인을 부양하는 규범 및 가치체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사회보장,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복지정책이 발전하면서 노인들이 가족보호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보장 급여와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행동이 변화하고 있다.

최근 노인요양원과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통념도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시설생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노인도 원하지 않았고, 자녀들도 노부모를 시설에 보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러한 관념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노인을 가족이 집에서 보호하는 것 보다 전문적 시설에서 보호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노인복지시설도 옛날과 크게 다르게 현대화되고 있어서 시설에 대한 선호도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경제가 계속 발전하고 도시산업사회가 성숙해 선진국과 같이 되면 대부분 노인들이 집이 아닌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회로 변할 것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 많은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현대사회로의 발전과정에서 시설생활노인이 증가하다가 일정한 수준에서 멈추고 오히려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격리된 시설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것보다 자율성이 보장되는 집에서의 생활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이제까지 살아온 익숙한 환경의 지역사회에서 때 묻은 가구를 만지면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진국의 경험에서 유추해 볼 때 최근 우리나라 노인복지시설의 증가와 시설생활노인의 증가추세도 일정한 수준에서 멈추고, 다음 단계에서는 지역사회중심의 노인생활, 즉 이제까지 살던 곳에서 생활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것(aging in place)이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국가의 노인복지정책은 이와 같은 사회변화와 전망을 전제로 그 방향을 설정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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