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는 ‘만사휴의’(萬事休矣) 아닌 새로운 도전의 시기
노년기는 ‘만사휴의’(萬事休矣) 아닌 새로운 도전의 시기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5.03 08:43
  • 호수 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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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기자/포천

원나라 때 황제의 명으로 편찬된 ‘송사’(宋史) 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에서 비롯된 말이다. 당(唐)나라가 멸망한 후 중국에는 5대10국(五代十國)의 혼란이 계속됐다. 5대란 중원에서 흥망한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다섯 왕조를 말하고, 10국이란 지방에서 흥망을 거듭한 전촉(前蜀)·오(吳)·남한(南漢)·형남(荊南)·오월(吳越)·초(楚)·민(종족이름민)·남당(南唐)·후촉(後蜀)·북한(北漢) 등을 말한다. 10국 중 하나인 형남은 당말에 절도사로 파견됐던 고계흥(高季興)이 세운 나라다. 고계흥 이후 4대 57년간 형남을 지배하다가 송조에 귀순했다. 고계흥에게는 아들 종회(從誨)와 손자 보욱(保勖)이 있었다. 종회는 보욱을 남달리 귀여워했다. 특히 보욱이 어려서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종회의 사랑은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종회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란 보욱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일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허약했으며, 음란하기까지 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버릇없는 보욱을 보고, 주위 사람이 그를 꾸짖으며 쏘아본 적이 있는데, 보욱은 그저 실실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전해 들은 형남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爲萬事休矣)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보욱은 자기 형에 이어 보위에 올라야 하는데, 이렇게 자부심도, 줏대도 없고 게다가 가치관마저 무너진 사람으로는 나라의 운명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였다.

오늘날에도 만사휴의는 도무지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일이 틀어졌을 때 체념조로 사용된다. 형남 사람들의 예견은 틀리지 않아, 보욱은 즉위하면서 바로 궁궐 증축의 대공사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히더니, 음란함이 극에 달해 기생들과 군사들을 풀어 혼음을 시키면서 그것을 보고 즐겼다 한다.

이러한 유래처럼 ‘만사휴의(萬事休矣)’는 어떤 사태에 직면해서 어떤 방도(方途)를 강구(講究)할 수 없는 체념(滯念)의 상태를 말한다. 의(矣)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단정(斷定)·결정(決定)·의문(疑問)의 종결로 쓰이는 어조사(語助詞)의 한자다.

이 성어를 대할 때면 한 생애를 살아오면서 죽음을 앞두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역정(人生歷程)을 둘러보게 된다. 계획했던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실의(失意)에 차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나이 듦이 실의의 원인이 돼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잘못으로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감’을 뜻하는 ‘만사와해’(萬事瓦解)의 상황을 인생에서 경험했듯 노년의 삶도 지난 후에 후해한들 무엇 하겠는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힘겹게 남은 여생을 사는 노인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이후이’(死而後已·죽은 뒤에 그만둔다)는 말처럼 살아있는 한 끝까지 삶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만은 아니다. 늙어서 날 찾고, 날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노소부정’(老少不定)이란 ‘노인이나 소년이나 수명이 일정하지 아니해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음’을 뜻하는데 노년의 삶을 ‘만사휴의’(萬事休矣)하는 마음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60세가 됐다면, 이제 40년의 인생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세상에는 굶어 죽는 홀몸노인이 있는가 하면, 퇴직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노인도 있다. 다만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도전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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