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여성노인은 여성인가 양성인가?
[금요칼럼]여성노인은 여성인가 양성인가?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5.06 11:36
  • 호수 26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 대표/부산광역시건강가정지원센터장

노인이 되면 상실하는 것들이 많다. 사회적 기대가 변할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접어들면 노인을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해 배려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여성노인은 노인이자 여성임에도 우리사회는 노인으로만 그 정체성을 묶어 버리려 한다.

여성노인을 위한 상담이나 특성화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면 많은 질의를 받는다. 여성노인을 남성노인과 분리해 다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 부서가 담당해야 하는가 등 반갑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고령사회를 달려가는 우리는 다각도로 노인의 삶을 존중하고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여성노인은 일생동안 가정을 중심으로 자녀양육과 가사를 전담해왔고,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도 없이 노년을 맞고 있다.

또한 여성노인들이 살아온 한국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구조로서 자아를 찾아 고민하거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다. 노년을 맞고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의존하는 자식들을 돌보는가 하면 손자손녀까지도 돌보고 있는 여성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매스컴에서 그려지는 여성노인의 이미지는 집안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회적 부담을 가진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여성들은 늙는다는 의미를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늙어간다는 자체를 두렵게 생각한다.

이러한 부정적 의미부여는 여성노인들에게 노년을 배우 불행하게 살아가도록 한다. 그동안 바쁘게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지켜나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공허함이나 우울증이 노년에 와서 나타나는 예가 많아지고 있다.

21세기 고령사회를 준비하는 우리사회에서 여성노인은 양성이 아니라 여성임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노인으로서 배려돼야 하고, 여성노인의 특수성을 이해받아야 한다. 시설에 입소하는 선택조건이나 시설에서의 생활도 여성성으로 배려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령친화산업에 있어서도 소비자인 여성노인의 특수성이 고려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시에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많은 제한점이 따른다. 여성노인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일자리나 노인일자리를 남성노인과 비교해 봤을 때 업종에 따라 제한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노인은 어느 계층보다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대한 애향심과 책임감이 투철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건강한 여성노인이 사회적 자본으로서 지역공동체를 보살피며 아름다운 마을을 만드는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일정한 지원체계를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노년기를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50대 이상은 우리가 예측한 결과보다 훨씬 다양한 관계에서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홀로된 상태에서 여성노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경우 아직 정확한 사회적 역할모형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며, 여성노인 역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건강한 여성노인의 사회참여방안이 보다 구체화돼야 하며 사회 역시 부담이 아니라 보다 생산적인 입장에서 여성노인의 사회참여 기회를 높여줘야 한다.

미국의 여성노인단체, 캐나다의 할머니후원단체, 퇴직 간호사협회, 여성 예비역 활동들은 여성노인의 삶을 부정적이지 않은, 노인이 돼서도 사회정의를 구현하거나 열악한 사회전반의 계층을 위해 여성노인들이 나서서 변화를 꾀하는 모습들이다.

한국사회에도 이러한 조직들이 곳곳에 마련돼 사회에 공헌하는 많은 할머니들이 만드는 따뜻한 사회문화가 조성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존중되고 노년이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