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자식 얼굴 보기도 힘들어
가정의 달… 자식 얼굴 보기도 힘들어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5.13 15:13
  • 호수 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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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자녀와 살고 싶다” 10명 중 1명 불과

 “어버이날 잊고 산 지 오래됐지. 어려서 학교 다닐 때나 카네이션 받아 봤지, 지금은 자식들이 먹고 살기 바빠서 다들 모여 얼굴 한번 보는 것도 어렵지….”

어버이날이자 일요일이었던 5월 8일. 서울 도심 내 공원에는 화창한 봄을 즐기려는 가족들로 만원사례를 이뤘다. 그러나 공원 입구와 잔디밭에는 친구들과, 또는 홀로 나들이를 나온 60~70대 노인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온가족이 함께 모이는 가정의 달, 그것도 휴일인 어버이날, 이 어르신들은 왜 쓸쓸이 공원을 찾은 것일까.

홀로 공원을 찾은 노인들의 대부분은 길게는 6일이나 쉴 수 있는 징검다리 연휴를 즐기려는 자녀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공원을 찾았다고 했다.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만난 정모(63·여)씨는 “초등학교 이후에 아들에게 카네이션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자식들이 주말여행을 가려는 것 같아서 나도 친구들과 주말에 약속있으니 안와도 된다고 말했다”고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34살 미혼의 아들과 함께 산다는 김모(60·여)씨는 “어버이날이 여자친구에게 초콜릿 주는 날(발렌타인데이)보다 덜 중요한 날이 됐다. 차라리 평일이면 직장 때문에 바빠서 못 온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휴일인데도 카네이션 한 송이, 말 한마디 없이 자기 할 일 찾아 외출한 아들을 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부인을 여의고 홀로 지내고 있다는 양모(65·남)씨는 “날씨가 좋아서 복지관 친구들과 윷놀이를 한 판 하고, 막걸리나 한 잔 하기 위해 나왔다”며 “자식들이 이번 주말에 온다고는 했는데 올지 안 올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하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는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복지관 주변의 공원에 나오면 비슷한 처지인 노인들끼리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고, 윷놀이나 장기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양재천 근린공원에서 만난 권모(68·여)씨는 “자식들이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했는데 어린 손자 둘에 다리가 불편한 나까지 끼면 번거롭기 때문에 다음에 가자고 말했다”며 “그래도 잠깐이라도 집에 들르면 좋을 텐데…,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큰 기대는 안한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던 박모(72) 어르신은 “어버이날은 꽃이라도 달아주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나 의미 있는 날”이라며 “다 큰 자식들은 어버이날이라고 통장으로 용돈은 꼬박꼬박 부치지만 얼굴 못 본지가 벌써 3년이 넘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박 어르신의 친구 김모(69)씨는 “자식들보다 늘 옆에 있어주는 술친구들이 더 좋다”며 “아들 두 명 모두 성격이 무뚝뚝해 무슨 일이 있을 때나 전화하지 평소엔 통 연락을 안 한다”고 말을 받았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오모(66)씨는 “내 배 아파 낳은 3명의 아들, 딸보다 강아지가 오히려 자식노릇 한다”며 “어버이날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 날만 이라도 그동안 못했던 말 한마디 건네고,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어르신들이 ‘외로운’ 어버이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여느 휴일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자녀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최근 서울시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희망하는 동거 형태를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세태가 잘 반영됐다. 서울시민 10명 중 1명만이 나이가 들어서 자녀와 함께 살겠다고 응답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시내 2만 가구(15세 이상 4만7010명)를 방문 조사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 ‘나이가 들어 혼자 살기 어려울 때 희망하는 동거 형태’로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은 7.0%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딸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도 3.8%에 불과했으며, 자녀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응답자 역시 10.8%에 그쳤다.

나이가 들어 가장 희망하는 거주 형태는 ‘자녀와 가까운 곳에서 혼자 살기’로 전체의 41.8%를 차지했으며 ‘노인전용 공간 거주’를 꼽은 응답자도 40.5%에 달했다. ‘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은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과 비슷한 수준인 6.5%로 조사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후에 아들, 딸과 동거를 꺼리는 이유는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눈치 보며 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반면 자녀와 가까운 곳에서 독립하고 싶다는 응답이 많은 것은 그래도 자녀들의 얼굴을 보며 소통하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의 달 5월에 더욱 쓸쓸함을 느끼는 노인들. 어르신들은 “부모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거창한 선물이나 용돈이 아니라 자녀들의 얼굴을 보며 말 한마디 나누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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