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지팡이와 유모차
[금요칼럼]지팡이와 유모차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5.23 10:10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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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경북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짚고 다니던 청려장이 보관돼 있다. 청려장(靑藜杖)은 명아주의 대로 만든 지팡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고, 민간에서도 신경통에 좋다고 해 귀한 지팡이로 여겼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장수(長壽)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하사했다고 전해지는데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우며, 모양 또한 기품과 품위가 있어 섬세한 가공 과정을 거칠 경우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50세가 되면 자식이, 60세가 되면 고을이, 70세가 되면 나라가, 80세가 되면 임금이 청려장을 선사했다고 한다. 이를 각각 가장(家杖), 향장(鄕杖), 국장(國杖), 조장(朝杖)이라고 해 장수한 노인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국장 이상을 짚은 노인이 마을에 나타나면 원님이 직접 나가 맞아야 했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에는 노인의 날을 법정일로 기념하며 새로 100세가 된 노인들에게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을 선물하고 있기도 하다. 전통 지팡이인 청려장은 최근까지도 민속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력이 쇠한 노인들이 지팡이 대신 유모차를 끌고 나오시기도 한다. 턱을 오르기 힘들고,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없이 넘어질 우려도 있지만 양손으로 잡고 걸어 다닐 수 있어 지팡이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경제성장과 민주화까지 이룩한 노인들이 손자 손녀까지 받아 키운 뒤 자녀들의 부축이 아닌 유모차의 부축을 받고 있는 풍경이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런 모습이 바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가슴 아픈 자화상 아닐까.

아쉽다 하더라도, 육아와 노인부양을 새로운 청장년층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출산육아정책도 풀어야 할 과제고, 노년을 주체적이지 않은 마치 부양해야만 하는 세대로 보는 시각도 풀어야 할 과제다. 즉, 부양 의무에 대한 인식이 가족부양에서 지역사회와 국가부양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일·가정 양립 지원, 결혼·출산지원, 보육·양육부담 경감, 다자녀 가정 지원, 베이비붐세대 은퇴지원, 현세대 노인 지원 등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국가부양으로 향하는 방향이요, 단계적 시행방안이지 결론은 아니다.

특히 작금의 정부 정책이란 게, 수요가 높은 계층에 초점을 맞춰 효과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나 민간기업이 혜택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례까지 보듬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정부 정책이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대책을 살펴보면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정부의 설명 자료는, 저출산 문제 해결로 고령사회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것 같이 풀어놨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유모차가 살아나와 노년을 부축하고 있는 것 같다. 먼 거리가 아니라면 제법 보행에 도움을 주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며 ‘먼 거리’가 아닌 단편적 접근을 하고 있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떠올리는 건 필자만의 노파심일까.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선언했듯, 부양 의무에 대한 인식을 가족부양에서 지역사회와 국가부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정부도 정부지만 국민 인식 개선이 토대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노년을 지탱할 지팡이 역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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