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과 함께 한 ‘청와대 관람기’
[기고] 대통령과 함께 한 ‘청와대 관람기’
  • 관리자
  • 승인 2011.06.10 15:33
  • 호수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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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경기 용인 기흥구 동일하이빌1차아파트경로당 회장

서울 강남중앙침례교회 원로장로 부부 31명은 지난 5월 19일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청와대(靑瓦臺)를 단체로 관람했다.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와 달리 구름이 해를 가려줘 관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입장 절차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춘추관 홍보관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청와대 하루 일과와 환영인사가 담긴 영상물을 시청했다.

홍보관에 이어서 우리의 발걸음은 ‘녹지원’으로 향했다. 어린이날 등 대통령 초청 야외행사가 치러지는 곳이어서 가장 익숙한 곳이었다.

녹지원은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곳에서 산책을 주로 한다고 했다. 중앙에 위엄 있게 자리한 160년 된 한국산 반송의 푸르고 늠름한 자태가 일품이었다.

국빈행사장으로 이용되는 전통한옥 ‘상춘재’가 우아한 품격을 뽐내고, 녹지원 옆 맑은 개울에는 비단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며 산수화의 한 장면과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냈다. 절정을 이룬 신록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사로잡힌 채 모두 감탄을 쏟아냈다. 반송나무와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단체사진도 찍었다.
자리를 구 본관 터로 옮겨 안내원으로부터 청와대의 역사와 유래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중반에 지금의 본관과 관저를 새로 지을 때까지 치욕의 조선 총독부 건물로 사용됐다.

일제의 제6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조선총독부 자리(옛 중앙청)에서 새로운 명당을 찾아 지금의 청와대 자리인 북악산 주변으로 관저를 옮겨 지금까지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됐다. 당시 명칭은 경무대였다. 청와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제2공화국의 내각책임제 아래 있던 윤보선 대통령이 관저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면서 부터다.

청와대의 기원이 된 파란 기와지붕의 건물은 김영삼 대통령 때 모두 헐리고 그 터에 기념표석이 새워졌다.

또 1990년 청와대 신축 공사 때 발견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비문과 경무대의 유래를 담은 안내판이 나란히 서 있었다. 청와대가 갖는 역사적 상징과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듯 했다.
우리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숙연한 마음으로 ‘나라의 안녕과 대통령의 바른 국정수행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치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과 정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는데, 갑자기 출타하시는 대통령 행사 차량과 마주하게 됐다. 기쁜 마음에 손을 흔들고 박수를 쳤는데, 뜻밖에 대통령이 직접 차에서 내려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도 나누고 기념사진까지 함께 촬영했다.

뜻하지 않은 놀라운 만남에 모두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마도 우리가 기도하느라 잠시 지체했던 것이 대통령과의 절묘한 조우의 축복으로 이어진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에 온 손님들을 맞는 ‘영빈관’을 둘러본 후 31명의 노부부의 파란만장한 청와대 관람은 모두 끝이 났다. 아쉬움과 놀라운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예쁜 도자기 컵도 기념선물로 받았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청와대를 방문해 직접 대통령과도 만나는 행운을 누렸던 행복한 청와대 관람. 일생을 바쳐 나라를 위해 헌신한 노부부들에게 하늘이 준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불철주야 국가발전과 번영을 위해 수고하는 대통령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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