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연령차별의 부메랑
[금요칼럼] 연령차별의 부메랑
  • 관리자
  • 승인 2011.06.24 14:23
  • 호수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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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연령차별’(ageism)이란 연령을 이유로 차별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국어사전에 ‘차별’(差別)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라고 돼 있다. 또 백과사전에는 차별을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차별은 ‘일반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과는 거의 무관하거나 전혀 관계없는 생각에 근거해 열등성을 부여하는 제도화된 관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돼 있다.

즉, 차별은 단순히 서로 다른 대상들을 구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등을 둬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그 차별의 이유가 실제 차별 받는 대상의 행동이나 특성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행해지는 차별 즉 성차별, 인종차별, 지역차별, 장애인 차별 등에서 보듯이, 차별은 차별을 당하는 그 대상의 실제 행동과 상관없이 평가를 받기 때문에 더욱 부당하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들은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돼 있다.

성차별의 경우 대개 여성이 피해자 그리고 남성이 가해자의 입장에 서고, 인종차별의 경우에도 특정인종이 피해자가 된다. 지역차별은 특정 지역이 그리고 장애인 차별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연령차별은 그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다른 차별과는 구별된다. 연령이란 대상의 고정적인 특성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즉, 연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 어린이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며 노인이 돼간다. 따라서 연령차별은 특정한 집단이 가해자가 되고 상대편이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언젠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뀌게 된다. 이런 연령차별의 특성 때문에 누군가는 연령차별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차별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구성원들이 동질적인 사회, 즉 단일민족, 단일인종에 가까운 사회에서 연령이라고 하는 속성이 갖는 구속력은 더욱 강력하다. 물론 우리 사회도 점차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단일민족국가에 가깝다. 일단 피부색이나 생김새, 언어 면에서 모두가 비슷하다보니, 연령이라고 하는 특성이 더욱 눈에 띨 수밖에 없다.

결국 연령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을 구분하는 가장 선명한 기준 중 하나가 되며, 연령에 의한 차별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또 연령차별은 정보화와 세계화 등으로 인해 사회의 변화속도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그리고 고령화로 수명이 연장되고 고령노인이 증가하면 할수록 더욱 심화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연령이 많다는 것이 경험이 풍부함을 의미했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한 농사에서 노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는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지혜보다는 새로운 기술의 습득과 변화에의 적응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게 되었고, 연령은 사회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방해하는 장해물로 인식되게 됐다. 고령자차별은 언젠가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에서 누구나 언젠가는 그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될 뿐만 아니라 노인이 된 이후에도 나이가 들수록 차별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어느 노(老)교수님의 씁쓸한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커피를 한 잔 하려고 대학가에 새로 생긴 근사한 카페에 갔다고 한다. 전망이 가장 좋은 빈자리를 찾아 앉아서 주문을 하려고 종업원을 불렀다. 그런데 이 노교수를 본 종업원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다가와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르신, 죄송한데 저쪽 구석으로 자리를 좀 옮겨주시겠어요? 어르신이 앉아계신 걸 보면 젊은 학생들이 불편하게 생각해서 못 들어오거든요.” 그 교수님은 단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고 화가 나서 커피 생각도 잊은 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인들은 지하철에서는 무임승차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이들의 찌푸린 눈살을 참아내야 하고, 고급 음식점에서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커녕 종업원과 젊은 고객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화장실에서 볼일 급한 젊은 아가씨 앞에 섰다는 이유로 괜한 미안함을 느껴야 하고, 갈 길 먼 버스에 힘겹게 오르는 것만으로도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틀림없이 지금 그 젊은이들이 가한 연령차별은 부메랑이 되어 미래의 그들에게 되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연령차별, 그것은 노인들에게 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미래의 자신들에게 가하는 부메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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