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복지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복지
받는 복지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복지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1.07.25 12:59
  • 호수 2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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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동 시니어 택배사 '실버퀵'(Silver Quick) 사원

전국 540만 노인 중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회적 통념과 물리적 신체 나이 때문에 노인이라고 규정지어질 뿐이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 구조에서 60~70대는 결코 노년세대가 아니다.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노동력으로서 충분한 능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60세가 되기 전에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게 현실이다. 100세 시대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65세만 넘으면 ‘잉여인간’이 되는 사회적 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노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앉아서 받는 복지보다 서서 찾는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올해 72세가 된 필자는 '실버퀵'(Silver Quick) 택배사에 최근 취직을 했다. 무위도식하던 무료한 삶에서 직장인이라는 소속감 때문에 매일이 기대되고 설렌다. 피부양자가 아니라 당당한 노동인력이 됐다는 자부심도 생겨났다. 더불어 움직이고 활동하는 만큼 건강해지는 효과도 얻고 있다. 택배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인들은 혈색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기분 좋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노년의 굳은 결심을 무색케 할 정도로 실버퀵의 업무 환경은 열악했다. 업무특성상 도집지역에 위치하다보니 제대로 된 사무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얼기설기 엮어 급조한 옥상 가건물이 사물실로 이용된다. 천장은 비가 오면 빗물이 안 새는 곳보다 새는 곳이 더 많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따가운 햇살이 그대로 들어온다. 우스갯소리로 ‘개폐식 자연친화 공법’으로 설계됐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연륜있는 노인들에게 환경적 제약은 큰 문제가 아니다. 조선시대 청백리 유 관(柳 寬)이 초막에 비가 새자 바가지를 갖다 놓곤, ‘아이고, 이것도 없는 사람은 어이 할꼬?’ 했다는데 우리는 받칠 것은 많으니 큰 걱정이 없다. 게다가 열어놓은 천장의 빗물이 바닥에 여울지어 흐르니 베니스의 곤돌라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비록 곤돌라는 못 띄워도 종이배는 띄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보다 더한 친환경 시설물은 없을 것이다.

변변한 사무실 하나 마련할 수 없을 만큼 여건은 열악해도 나름 의미를 부여해 보지만, 노동량에 비해 발품도 안 나오는 대가(代價)에는 때때로 가졌던 자긍심에 갈등이 섞인다. 게다가 불경기의 여파는 유사업종의 홍수를 불렀고, 덤핑에 가까운 가격 경쟁은 고스란히 노인들의 임금에서 충당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척박한 여건 앞에서 약간의 동요도 있었다. 무료함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굳게 결심하게 시작한 ‘제2인생의 출발’이었지만 막상 부딪혀본 현실에서는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생활체육으로 건강을 다지면 ‘경제적 효과’로 비약하지만 용돈이라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는 계층에겐 현실성 없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일간지에 “노인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자”라는 이 심(李 沁) 대한노인회장의 기고문을 봤다. 이 나라 산업화의 중심에 섰던 세대들의 고령화로 그들의 값진 경륜이 홀대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식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장된 노동력의 활용, 보편적 노동가치의 구현 등 시대가 요구하는 노년세대의 진정한 위상을 스스로 정립해야 하고, 떳떳한 사회 구성원이 되길 자임해야 한다는 말이리라. 필자가 어설프게나마 주장한 ‘받는 복지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복지’와도 맥이 닿는 뜻이리라. 때맞춰 ‘대한노인회지원법’이 제정된 것도 노년세대의 입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명제를 확인시키는 일일 것이다. 처음 이 일에 나설 때, 행여 지인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나약함이 있었지만 ‘가치는 스스로…’라는 화두가 큰 원군으로 작용해 힘을 실어 줬다.

이 기회에 취약 계층을 위한 여러 형태의 공공기금 지원이 있지만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려는 이들 노년들에겐 왜 아무것도 없는지 정부에 묻고자 한다. 새삼 유휴 노동력의 활용, 자력의지, 건강증진 등 사회 기여도를 언급 하지는 않겠다. 다만, 근로가 복지요, 복지는 곧 근로라는 의미로 스스로 나선 계층에게도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지하철 어느 역, 어느 출입구 계단이 몇 개인지를 훤히 꿸 만큼 뛰어다녀야 하는 고단한 일터이지만, 이제는 비록 ‘종이배’를 띄울망정 나의 일터 ‘실버 퀵’을 사랑하리라. 소년시절 사회적 표방어(標榜語)가 ‘근로보국’이었듯 오늘의 이 지식정보화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되새기며 열심히 하리라. 그리고 또 열심히 계단을 세며 뛰고 달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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