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노인의 지혜가 투표로 나타나야 할 때
[금요칼럼] 노인의 지혜가 투표로 나타나야 할 때
  • 관리자
  • 승인 2011.08.05 14:37
  • 호수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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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인복지에 관한 교과서나 여러 가지 글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장은 노인의 지혜와 경륜을 사회발전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즉, 노인이 오랜 세월 동안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륜을 다양한 사회영역에 활용하면 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노인이 그 지혜와 경륜을 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젊은이들이 노인의 지혜와 경륜을 인정하고 존중해서 노인이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지 의심스럽다. 노인의 지혜와 경륜에 관한 주장은 그저 구두선에 그칠 뿐, 사실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노인의 부정적인 사회적 이미지가 한 몫을 한다. 노인의 지식은 너무 낡아서 현대적 삶에는 쓸모가 없고, 노인의 사고는 유연성이 없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변화하기가 어려우며, 노인은 고집불통이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대화하고 타협해 더 발전적인 것을 도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 소수로 치부되는 노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다. 노인은 정말 쓸모없는 존재이며, 사회적으로 짐이 될 뿐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치로 따지는 경제적 생산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노인의 지혜와 경륜이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많은 돈을 벌어 호화롭게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무한경쟁 속에서 많은 패배자를 만들며 자기 혼자 승리감에 도취해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내핍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통해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노인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돼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적 삶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사회가 올바른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 정치영역이든 경제영역이든 혼자만 혹은 자기 집단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극히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판을 친다. 법과 질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하다면 무엇이든지 못할 게 없다는 패륜아적인 무질서가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노인이 가난과 고독과 무관심 속에 3등 인생으로 전락돼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질주의, 이기주의, 무질서에 대한 노인의 걱정을 사회적으로 표현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선거에서 투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표는 뭉쳐지고 조직되지 않으면 효력이 떨어진다. 아무리 노인의 수가 많아도 그들이 모여 표로 실력행사를 하지 않으면 노인의 주장에 귀 기울일 사람은 없다. 선거철이 되면 일시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노인단체에 기웃거리다가 시일이 지나면 언제 보았느냐는 식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노인들이 우리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이를 표로 연결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교육, 복지, 통일 등의 문제에 대해 정당과 출마자에게 입장 밝히기를 요구하거나, 노인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정책대안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최근 우리사회는 복지 포퓰리즘 이슈가 무성하다. 보육비, 학교급식, 대학등록금 등에서 각 정당의 주장이 표만을 얻기 위한 인기영합적 주장인가 아니면 정말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 있는 주장인가 하는 것이다.

국가 재정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면 충분한 예산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무작정 시행했다가는 나라가 절단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있다. 한 치의 양보 없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상태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주장에 힘을 실어줘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서울시는 18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무상급식에 관한 주민투표를 실시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입장이고 시의회는 주민투표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삶의 지혜와 경륜이 있는 노인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런 노인을 회원으로 갖고 있는 노인단체는 또 어떤 입장인가? 회원 안에 여(與)의 성향과 야(野)의 성향을 갖고 있는 노인이 있으니 입장을 보류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필자는 사회적 이익단체는 어느 정도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념을 지지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모든 노인단체는 회원에게 유리하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주장할 때 그 존재가 부각된다. 이제 선거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노인단체들은 사회적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고, 노인들의 표를 조직적으로 행사할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단체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추락할 것이다. 이런 일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첫째,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문가에 의한 냉철한 판단과 미래지향적 설계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둘째, 예비노인을 회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노인으로만 이뤄진 단체는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예비노인(50세 이상)까지 포함된 노인단체는 폭넓은 지지계층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강한 세력을 과시할 수 있다.

셋째, 지역에 기반을 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런 저런 노인단체가 출몰했으나 대부분 너무 거창한 구호를 외치거나 처음부터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됐었다. 노인의 사회참여가 아직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 활동을 통해 신뢰와 실력을 쌓고 여세를 몰아 전국 네트워크를 조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표어를 되뇌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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