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보내달라” 가출 상경… 양원주부학교 중등부 졸업
“학교 보내달라” 가출 상경… 양원주부학교 중등부 졸업
  • 연합
  • 승인 2011.08.26 11:03
  • 호수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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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에 졸업장 받는 강순자(70) 어르신

“아부지 저 학교 보내주세요~,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책보 매고서~, 학교에 가는 게 저는 부러워요~.”

강순자(70) 어르신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의 가락과 노랫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교에 보내달라고 떼를 쓰며 직접 지어 부른 노래이기 때문이다.

8월 24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원주부학교에서 중등부 졸업을 한 강 어르신은 입학하기 전까지 칠십 평생 배움의 꿈을 가슴 한구석에 한처럼 지니고 살았다.

강 어르신은 194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형편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부모가 이혼하면서 학교 문턱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년 만에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새 가정이 꾸려져 강 어르신은 눈칫밥만 먹으며 살았다.
흰 저고리를 곱게 다듬이질해 입고 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 학교에 보내달라고 노래를 불러도 아버지는 들은 체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어르신은 열두 살 때 집에 있던 밀 한 자루를 시장에 내다 팔아 기찻삯을 마련해 서울로 떠났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 가출한 것이다.

어르신은 무작정 찾아간 종로경찰서에서 만난 ‘강순경’네 집에서 새 삶을 살게 됐다. 강 순경은 “학교에 가게 고아원에라도 데려다 달라”는 할머니를 집으로 데려가 돈암동에 있는 야학에 보냈다.

야학에서 한글을 겨우 깨친 강 어르신은 열아홉 살 때 시집을 가면서 다시 배움의 길에서 멀어졌다. 솜틀을 돌리고 쌀장사를 하면서 네 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녀를 전부 시집·장가보내고 나니 공부 욕심이 다시 생겼다. 지난해 7월 친구가 다니던 양원주부학교의 문을 두드렸고, 초등학교 과정인 기초부 2개월을 거쳐 중등부를 1년 만에 졸업하게 됐다.

처음 학교에 나갈 때 주변에서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냐”며 뜯어말리기도 했지만 강 어르신은 지하철로 왕복 두 시간이 넘는 등하굣길을 거르지 않았다. 그는 “같이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마음가짐이 제대로 된 사람들인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강 어르신은 이날 기초부 49명, 중등부 104명 등 ‘동문’ 230명과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졸업식 단상 앞에 선다. 어르신은 “이제 어디 가서 글자 때문에 신세 지지 않는다”며 “다음 달부터는 고등부 수업을 들어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칠 작정”이라며 벌써부터 열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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