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임종 어렵지 않다
편안한 임종 어렵지 않다
  • 관리자
  • 승인 2006.11.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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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대개 타고난 운명보다 오래산다. 병원에서 인위적으로 임종을 늦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존엄사’라는 말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존엄사란 불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임종환자가 인위적인 연명장치에 의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편안하고 품위 있게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절대자, 혹은 자연이 데려가는 때까지 고통 없이 산다는 점에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과도 통한다. 그래서 뜻있는 임종질환자들은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존엄사 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한다.


안락사는 좀 미묘하다. 우리나라에서나 외국에서나 아직 불법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안락사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의 테리 샤이보, 우리나라의 보라매병원 사건 등은 안락사 문제를 사회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수년, 혹은 그 이상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치료될 가망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켰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뜨거웠다.

 

법은 엄격했다. 법 제정 취지는 환자를 위한 것이었지만, 법이 정말로 환자를 위해 집행됐는가는 따져볼만하다. 법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환자를 보살피던 가족이 환자를 위해 한 일로 처벌 받은 셈이다.


의료 연구자들에 의하면, 의식불명의 환자들이라도 영혼은 깨어 있다고 한다. 듣고 느낀다는 것이다.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깨어난 사람들이 그런 증언을 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그래서 안락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의료과학, 특히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기술은 날로 첨단화되고 있다. 사람 몸에 컴퓨터 칩을 심을 수 있는 지경이다.

 

이런 과학문명 시대에 생명연장을 작심하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10년이고 20년이고 욕창 등창이 나는 채로 강제 심장박동기를 달고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삶이 아니다.


의식불명일 때, 육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갔는지 아직 육체에 머물고 있는지 현대 과학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말기 질환자의 경우는 더하다. 영혼이라는 개념은 비과학적이다.

 

또 안락사가 인륜적 문제이기도 하므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의료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뭔가 바뀌어야 한다.

 

인위적인 연명장치에 의해 죽지 못하는 ‘반주검’들이 자칫하다 우리 주변에 산처럼 쌓일 수 있다. 살아남은 자(가족, 의사, 병원측)들도 원치 않고 죽어가는 당사자도 원치 않는 일이다.

의료진의 전문적인 판단으로 수개월 이내에 임종을 맞게 될 환자의 경우라면 이제는 고통 없이 임종하도록 하는 호스피스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옛사람들이 집에 관으로 쓸 널을 들여 놓고 수의를 지으며 죽음을 준비한 뜻이 무엇인가. 자연사 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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