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上元)날 액막이 놀이
상원(上元)날 액막이 놀이
  • 관리자
  • 승인 2012.01.16 16:50
  • 호수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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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석 대한노인회 상주시 외남면 분회장

설, 상원, 한식, 단오, 유두, 칠석, 한가위, 동지, 제석 등 명절이 되면 옛 선조들은 전통놀이와 세시풍속을 통해 개인과 마을 공동체의 꿈을 키우고 협동심도 다져왔다. 남녀유별이 추상같은 시절에 남녀노소가 서슴없이 즐기는 자리가 마련됐기 때문에 명절을 더욱 기다렸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했는데 이날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소원을 빌었다. 설날과 정초에 주고받은 덕담과 소원을 정월대보름날 다짐하며 정성으로 기원을 드렸다. 동시에 액막이를 빌며 한해의 액운을 떨쳐내는 놀이를 했다. 어른들은 음력 정월에 묘일(卯日)이 셋이면 보리풍년이 들고, 오일(午日)이 셋이면 가뭄이 들며, 해일(亥日)이 셋이면 장마가 진다고 여겨왔다.

농경사회에서는 정월보름이 한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보름날에 밥 아홉 그릇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정월보름에는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어른들은 대동 윷놀이를 했고, 아이들은 손때 묻은 연을 액막이의 의미로 멀리 날려 보냈다.

필자도 칠십 여년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원날의 추억이 아련하다. 어머니는 지난해 정성으로 거둔 곡식과 채소로 요리를 하셨다. 식구들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고 밤과 호두 같은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인 이명주(耳明酒)를 마셨다. 부럼은 치아의 건강을 지켜주고, 이명주는 듣기 좋은 기쁜 소식이 많이 들리도록 귀를 밝게 해 준다고 믿었다.

보름날 아침밥상은 오곡밥에 나물상이다. 가장 먼저 김이나 아주까리 잎에 오곡밥을 싸서 먹는 것은 오복을 도망가지 못하게 액막이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내 더위를 팔 욕심에 밥을 허둥지둥 먹었던 당시의 추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보름날 행사는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절정을 이뤘다. 풍물을 앞세운 흥겨운 마을 축제가 열렸다. 마을 입구에서는 동제, 당제, 서낭제 등의 크고 작은 제를 올리고, 규중 아녀자들은 답교놀이를 펼쳤다. 여인들이 담 밖으로 출입이 제한되던 과거에는 큰 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또 오곡밥을 나눠 먹는 풍습은 빈부귀천의 높은 담을 잠시나마 허물 수 있었던 풍습이었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더위를 팔고, 저녁이 되면 달을 보며 한해의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동내 아이들과 청년들은 뒷동산 가장 높은 곳에 청솔가지 달집을 짓고 환호의 함성을 크게 질렀다. 달집을 태우면서 저만이 간직한 소원을 간절히 빈다. 짓궂은 총각들은 “장가가게 해 주세요”하면서 장난기 공개 구혼을 해 웃음꽃을 피웠다.

민속학자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민속놀이를 보존계승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근대화의 거친 파도 아래 우리의 전통문화는 점점 그 빛과 멋을 잃어가고 있다. 주권을 빼앗겼다 되찾고, 동족간의 전쟁을 겪으며 지내온 팔십여 년 동안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세상은 더욱 편해졌지만 과거에 넘쳤던 이웃과 가족간의 정은 메마르고 있다. 전통 명절도 설날인 정초와 한가위만이 명절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나머지는 달력에 이름만 표시되며 겨우 명맥만 이어지고 있다.

한류의 열풍을 타고 우리의 가요와 한글, 문화가 전 세계로 보급되고 있다. 박물관에만 있는 전통보다는 명절 고유의 풍속을 되살린 전통문화유산이 전해지는 날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지방 고유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유지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지역축제도 다양하게 개최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전통문화를 소개했으면 한다. 명절의 아름답고 즐거운 세시놀이만이라도 재조명해 관광자원화해 전승 발전시키는 것이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컴퓨터와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에게 전통놀이와 문화를 함께 하는 설 명절과 정월대보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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