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의 과거 모습
[기고]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의 과거 모습
  • 관리자
  • 승인 2012.01.20 14:10
  • 호수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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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기자/구리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시대가 생각난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필자는 경기도에서 임명된 ‘노후생활설계사’로 구리시 노인회관에서 상담에 임하고 있는데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국민과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정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도, 결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초를 잘 닦아놓고 과감하게 경제를 살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경부 고속도로만 보아도 반대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강행처리 한 것이 결과적으로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다.
청와대 구내 이발관에서 박 전 대통령의 내복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본 이발사가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옷 속에 입는 것인데 어떠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국민들이 추워 고생 하는데 우리만 따듯하면 되겠느냐”며 “난방을 끄고 모두 두툼한 옷을 입고 출근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화들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면모다.

특히, 경제를 살리기 위한 외화벌이에 나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을 현지에서 만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비참하고 고생스런 모습을 보고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는 실화는 지금까지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도 남는다.

김황식 총리가 1963년에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을 총리실로 불러 식사를 함께하면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여러분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치하한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생각만 해도 가난하고 끔직 했던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부모님 덕분에 크게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모처럼의 소풍 때도 점심을 걱정할 정도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상태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겨온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살아오던 대한민국이 불과 얼마 전, 이제는 어려운 나라를 돕는 원조국으로 격상된 사실은 놀라운 현실임에 틀림이 없다.

얼마 전에는 G20세계정상회담을 한국에서, 그것도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 회의를 주도하게 됐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잘 살게 됐다고 이제 와서 만리타국에 건너와 돈 벌어 잘살아 보겠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괄시해서야 될 말인가 싶다. 안타까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어 한참이 지났는데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어린 나이에 남편에 의해 타살된 사건이나,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소위 ‘3D’업종에서 월급 몇 푼 받겠다고 피땀흘려 일하고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 외국인들이 자국에 돌아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계 각국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장차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걱정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을 생각하자.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백번 치른다 해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을 푸대접해서야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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