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선진화, 노인복지 초석이자 고령화 해법”
“경로당 선진화, 노인복지 초석이자 고령화 해법”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2.02.24 14:30
  • 호수 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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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책임지는 시니어리더] 이영복(79) 서울 여의도구립아파트 경로당 회장

 “노인 주거·문화·복지 공간인 경로당을 즐거움 넘치는 안락한 가족공동체로 만든다면 어르신들의 노후행복지수는 크게 높아집니다. 경로당은 노인복지의 초석(礎石)이자 고령화 대책의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14세기부터 16세기 인본주의를 강조하며 중세 문화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던 ‘르네상스’. 그에 버금가는 고령화 패러다임의 전환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많은 경로당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너무 거창한 비유일까. 서울 여의도구립아파트 경로당 이영복(79) 회장도 ‘경로당 르네상스’를 이끄는 노인지도자 중 한 명이다.

이영복 회장은 ‘경로당은 가족공동체 형태의 노인문화·복지의 거점’이란 신념 아래,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 경륜과 인맥을 총동원, ‘경로당 르네상스’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9년 11월 그가 서울 여의도구립아파트 경로당 회장을 맡은 이후 경로당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경로당을 주거생활공간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노후한 건물이라 방수, 바닥·난방 공사를 비롯해 도배와 장판까지 교체하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됐다. 또,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주기 위해 냉장고, 식탁, 주방가구도 교체하고, 식기세척기 등의 위생 처리시스템도 갖췄다. 물론 공사에 소요된 예산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이영복 회장은 지자체와 노인회, 민간기업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공사 비용을 끌어모았다. 23년간 교육청 공무원으로 일하며 쌓았던 인맥과 행정능력이 일궈낸 결과였다. 또, 아파트 주민과 지역 단체의 기부로 실내자전거, 안마기, 대형TV 등의 편의시설까지도 기증받을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남녀 어르신들의 공간을 분리해 개별 출입문과 휴게공간을 마련한 점이다. 이는 이용 빈도가 높은 여성 어르신들을 배려한 것으로, 회원들의 의견을 공사에 반영한 결과다.

공사 완료 후 이 회장이 추진한 사업은 문화·복지 프로그램 활성화였다. 그는 지자체와 노인단체를 적극 활용해 복지관 못잖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신바람체조, 일본어, 서예, 발마사지 등의 여가·문화 강좌뿐만 아니라 상담전문가의 우울증 특강, 자살예방 교육, 지능테스트, 웃음치료, 노인심리 상담까지 병행하고 있다.

그는 “고령화시대의 해법은 전국 6만여개 경로당의 변화와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며 “지역별 특색을 살려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면 과거 ‘사랑방’ 수준을 벗어나 노인 문화·복지의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얼떨떨하던 회원들이 지금은 경로당 회장보다 더 열성적이다. 회원의 90%가 매일 경로당을 찾을 정도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열의도 높아 각종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도 거뒀다. 2010년 ‘신바람체조’ 경연대회 2위,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부 노인건강운동 경연대회 은상 등을 수상했다. 대회를 앞두고 합숙훈련을 하며 손수 단체의상까지 제작했던 어르신들의 열정이 낳은 수확이다.

자신감을 얻은 경로당 회원들은 이제 자원봉사도 펼친다. 자매 결연을 맺은 인근 초등학교의 등하굣길 교통봉사를 비롯해 공원 및 아파트 주변 환경미화사업도 열심이다. 경로당에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자 회원들도 덩달아 증가하는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2년 전 35명이었던 회원이 현재는 48명까지 늘었다. 이제는 인근 경로당에서 견학 올 정도다.

이영복 회장은 “경로당 어르신들이 불편한 점이 없는지 항상 살피는 것이 내 임무”라며 “일생의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모든 힘을 어르신들을 위해 쏟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하루 일과는 경로당 주변 청소로 시작된다. 과거 공보관에서 사진을 담당했던 경력을 살려 어르신들의 가족행사에도 일일이 참석해 촬영기사를 자처한다.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어르신 사랑’은 2011년 11월 빛을 발했다. 대장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그는 경로당 어르신들을 더 걱정했다.

그가 경로당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데는 사연이 있다.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컸다. 그는 “경로당 회원들을 내 어머니이자 할머니라 생각하며 섬기고 있다. 그것이 할머니가 베풀어 주신 사랑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지금도 그의 지갑에는 빛바랜 할머니 사진이 있다. 할머니께서 작고할 당시의 연세보다 많은 나이가 됐건만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엔 어린 손자의 눈물이 맺힌다.

그는 인생의 장벽을 마주할 때면 “세종대왕 후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청렴’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이영복 회장은 세종대왕의 13남인 밀성군의 19대 손으로 현재 전주이씨 밀성군파 종친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밖에 대한노인회 홍보 자문위원, ‘나라사랑’ 연구소장, 삼락회 홍보담당관,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부회장으로도 활동하며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경로당 르네상스’를 꿈꾸며 선진 경로당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는 이영복 회장.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경로당 공동체 만들기에 고심 중이다. 앞으로 경로당을 2층으로 확장하고, 그 곳을 1·3세대가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경로당 장학금을 신설해 어렵게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도 담당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글=안종호 기자 /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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