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기’의 철학, 걸언(乞言)
[금요칼럼]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기’의 철학, 걸언(乞言)
  • 관리자
  • 승인 2012.03.09 14:05
  • 호수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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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아버님, 그냥 두시고 편히 계세요” “어머님, 제가 해 드릴게요.”
낳고 기른 은덕만 해도 갚을 길이 없는 부모님께 자녀들이 두 팔을 걷고 나선다. 본인들도 머리가 희끗한데, 그보다 연로한 부모님께 효도 차 ‘돌봄 서비스’라도 해 드릴 모양이다.
연로한 부모님이 대접받는 기분을 만끽하며 효심을 칭찬하는 사이, 필자는 사회복지 철학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자녀의 효심을 사회과학과 비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실생활을 사회복지에 접목함으로써 천부인권으로서의 사회복지서비스를 강조하려는 의도임을 먼저 밝힌다.

육체적 봉양과 정신적 봉양
‘효심’하면 떠오르는 이가 증자다. 공자의 수제자였던 증자는 부모님 봉양 때문에 벼슬에도 오르지 않았다. 증자와 그의 아들 증원이 부모를 봉양한 모습을 통해 진정한 효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살펴보면 이렇다.
증자는 아버지 증석을 봉양할 때 밥상을 여유 있게 차렸고, 상을 물릴 때는 반드시 주실 곳이 있는지 여쭈었으며, 남은 게 있는지 물으시면 반드시 있다고 대답한 뒤 의중에 따라 남에게 베풀었다. 증석이 죽자, 증자 역시 그의 아들 증원에게 봉양 받았는데, 증원은 상을 물릴 때 주실 곳이 있는지 여쭙지 않았고, 남은 게 있는지 물어도 다음에 다시 올리기 위해 없다고 답했다.
증자가 봉양한 것은 부모의 ‘뜻’이었고, 증원이 봉양한 것은 부모의 ‘몸’이었다. 나아가, 증자는 부모의 인격과 사회적 관계를 세웠지만, 증원은 자신의 체면을 세웠다.

필요한 건, 보호 아닌 자립자활
사실 ‘돌봄’이나 ‘보호’는 지엽적인 서비스이며, 사회복지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과는 대비되는 면이 있다. 사회복지의 올바른 철학은 서비스 이용자가 떳떳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이용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까지 대신 하는 것은 오히려 자립자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실생활의 예도 마찬가지다. 어르신의 머릿속을 미뤄 짐작해 모든 일을 대신 한다면, 어르신은 대접받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르신의 인격과 사회적 관계를 세워드리기 위해서는 일의 주도권을 자녀가 쥐어서는 안 된다. 어르신께 직접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스스로 주도하도록 돌려드려야 하고, 주인 되어 사시도록 섬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의 올바른 철학이다.

선택권 돌려드리기
사회복지는 우리 삶을 윤택케 하는 ‘미덕’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세우는 ‘과학’이다. 어르신을 어른답게 살게 하는 것, 어르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 드리고 어른 노릇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 사회복지인 만큼, 굳이 도울 일이 눈에 띈다면, ‘내가 할 테니 가만 계시라’는 말보다는, 거들고 기여하게 해 드려야 한다.
이런 사회복지 철학을 잘 나타내는 단어 중에 ‘걸언’(乞言)이라는 말이 있다. 걸언은, 노인(老人)에게 교훈이나 길잡이가 될 말이나 가르침을 달라고 청하는 것을 뜻한다. 연로(年老)한 사람에게 좋은 가르침을 구한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국왕이 국정(國政) 전반이나 기타 여러 문제에 관해서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언뜻 거창한 단어지만, 현대사회에 접목하면 실생활의 혜안도 엿볼 수 있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제 맘대로 해석하지 않고, 사사건건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해 선택권을 돌려드리는 것, 그것 역시 사회복지 철학이 담긴 ‘걸언’이다.

반부패 실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은 온 국민의 땀과 노력과 열정으로 이룬 성과다. 곳곳에 어르신들의 숨과 손길이 안 닿아 있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일부가 성과를 좀먹는 부정부패도 만연해 있음을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만큼, 필자는 사회복지전문가 단체 수장으로서 어르신들께 한 가지 ‘걸언’을 드리고자 한다.
최근, 한국사회복지사협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반부패국민운동연합을 꾸리고 청렴, 투명성, 책임성을 가치로 운동을 펼쳐 나아가고 있다. 사회복지 원로들도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뭉친 이때에, 특정단체와 지역사회를 넘어 전체사회가 함께 반부패실천에 동참하는 것은 어떨지. ‘부정·부패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라, ‘나부터 부정·부패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대오각성의 서약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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