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시의 눈을 뜨게 한 빛”
“내 아버지는 시의 눈을 뜨게 한 빛”
  • 관리자
  • 승인 2012.05.04 14:59
  • 호수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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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인세계’ 특집…‘시인이 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그때 가장 왕성했던 나의 기도는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아버지를 모실 수 없었고, 노인병원에서 특별해야 할 내 아버지가 다른 노인들과 바보 인간을 연출하는 것을 도저히 내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이기심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중략) 밥 먹듯 하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 1997년이었다.” (35쪽)
시인 신달자(69)는 아버지를 ‘빛’이라고 했다. 숨이 잦아드는 생의 마지막까지 일기를 미루지 않던 아버지. 스러지는 육신을 따라 그의 맑은 기상이 무너질까 걱정하던 시인은 아버지를 선산에 묻은 그날 시를 썼다.

“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 땅은 나의 아버지 / 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들었다 /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 / 발톱 저리게 황망하다” (‘아버지의 빛’ 중)

신 시인은 아버지가 가시며 자신의 꽉 막혔던 시의 눈을 뜨게 했다고 말했다. 연작시 ‘아버지의 빛’ 10편이 그렇게 태어났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는 2012년 여름호에 기획특집 ‘시인이 쓴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실었다.

신 시인을 비롯해 김종길, 문인수, 김종해, 정일근 등 국내 원로·중진 문인 12명이 부모에 대해 쓴 시와 토막글을 담았다.

김종길(86) 시인은 아버지를 회상하며 20대 후반에 쓴 시 ‘성탄제’를 불러온다. 김 시인은 열이 펄펄 끓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 온 아버지를 회상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노래하던 당시 실제 아버지와는 소원한 사이였다고 말한다.
김 시인은 파산 지경에도 자신을 학교에 보내어 자신을 기른 아버지에 대해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나에게는 남다른 아버지”였다고 고백한다.

시인 감태준(65)은 1970년대 유신 체제 속 민주화 투쟁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시절 내자동 허름한 뒷골목 술집에서 읊은 ‘사모곡’을 떠올린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 길 밖에도 가지 않고” 달이 되어 자신을 지켜준다고 노래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시인은 여전히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또 암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어무이요, 백옥 같은 피부가 다시 시집가도 되겠습니더”라고 말했다는 시인 정일근은 “나에게는 어머니는 부처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극락”이라고 전한다.

표현방식이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12명의 시인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부모에 진심 어린 존경과 애정이 담겼다.

총론을 쓴 문학평론가 엄경희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라는 존재의 있음(Being)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라는 점에서 생의 충족감의 원천이자 궁극적 결핍감의 원천”이라며 “사랑과 행복, 불화와 연민, 후회, 회한 등 다양한 관계 체험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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