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낙원,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길러 낸 억척 어머니 |
비탈진 언덕길 인천 형무소 터엔 지금 찜질방 들어서 사람들 웃음꽃 피우며 여가 즐기지만 예전 이곳은 백범 어른 잡혀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곳 국모 살해범 츠치다를 처단한 사형수 아들 위해 삼남 지방으로 쫓기는 아들 인과 신 어린 손자 두고 상해 뒷골목 배추 시래기 주어 오늘도 허리띠 질끈 동여매고 너희가 통일을 이루었느냐! |
백범은 광복 후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자신의 옥바라지를 위해 인천으로 거처를 옮기고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먹을 것을 얻어다 주신 모습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일제에 의해 일어난 국모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 츠치다(土田讓亮)를 죽인 백범은 재판을 받기 위해 인천 형무소로 이송됐다. 이때 어머니 곽낙원과 아버지 김순영은 황해도 해주의 가산을 정리하고 자식의 옥바라지를 위해 함께 인천항으로 넘어왔다. 이후 감옥을 밥 먹듯이 드나들던 아들 백범의 옥바라지는 물론 어린 손자 둘을 남겨놓고 일찍 세상을 뜬 며느리를 대신해 빈 젖을 물리며 어린 손자를 키워냈다.
그뿐만 아니라 곽 여사는 반평생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고락을 같이한 ‘임시정부의 어머니’다. 백범이 중국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경무국장 직에 있을 때 임시정부 살림살이가 극도로 나빠지자 곽낙원 여사는 시장에 나가 배추 껍질을 주워 팔았다. 어떻게든 임시정부 요인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경성 총독부에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어린 두 손자를 데리고 일제경찰들을 따돌리며 백범이 있는 중국으로 건너간 일화는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곽 여사 탈출 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을 중심으로 발칵 뒤집혔음은 물론이고 일제의 상해 총영사관, 천진 총영사관, 청도 영사관 등 산하 각 경찰들을 동원해 곽 여사를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 이 사실은 <조선통치사료> 제8권 (일본 동경 1971년 판)에 극비로 기록돼 있다.
곽여사의 유명한 생일상 일화도 있다. 아들 동지들이 돈을 모아 생일상을 차려주려 하자 손수 맛있는 것을 지어 먹겠다고 돈을 받아 그 돈으로 권총을 사서 일본 놈을 죽이라며 청년단에게 건네줬다는 것. 이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찡하게 한다.
평생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다 1939년 4월 26일 망명지인 중국 중경에서 80살로 생을 마감한 곽 여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에 옷깃을 여며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민족시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시집‘서간도에 들꽃피다’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집대성한 최초의 시집으로 저자가 10여년 동안 중국, 일본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사료를 토대로 구성됐습니다.‘시로 읽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통해 역사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과 업적,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문의 02-733-5027)